[과학세상/김희준]무심한 천지, 보듬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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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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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과학은 하나의 사실과 다른 사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뉴턴의 중력법칙은 사과가 떨어지는 사실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사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식이다. 그보다 약 200년 후에 다윈은 인간이 제한된 식량을 놓고 경쟁하는 맬서스적 상황과 생물 종이 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고 번식하는 상황 사이의 유사성에서 진화론의 힌트를 얻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의 참상을 보면서 지진과 같은 자연 현상이 우리 자신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다는 아이러니를 되새겨보게 된다. 137억 년 우주 역사에서 3분의 2의 시간이 흐른 후 지금부터 46억 년 전에 태양계가 태어났는데 초기의 지구는 현재의 지구와 크게 달랐다. 우선 대기도 질소와 산소 대신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인 수소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소행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내는 마찰열 때문에 표면은 화산 폭발 때 분출되는 것과 같은 마그마로 덮여 있었다.

소행성의 충돌이 뜸해지면서 마그마가 식어 지각이 생기고 가벼운 수소는 다 날아가서 대기가 사라졌다. 이때 지구 표면은 소행성 충돌 자국을 제외하고는 지금과 달리 전체적으로 편평했을 것이다. 지각은 지판이라고 불리는 몇 개의 커다란 조각으로 이루어지고 이 지판은 뜨거운 마그마에 올라앉아서 서서히 움직이다가 서로 충돌하면 충돌 부위가 솟아올라 산을 만들기도 하고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히말라야 산맥도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충돌해서 생긴 지각의 주름이다.

초기 지구에서 화산 활동은 지구 내부로부터 이산화탄소 질소 수증기를 표면으로 운반해서 새로운 대기를 만든다. 대기가 식으면서 지구에 대홍수가 오는데 이때 지구가 편평했다면 지구 표면 전체가 골고루 얕은 바다가 됐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화산과 지진 등 지각 활동이 없었다면 바다는 있어도 산은 없고, 바다 생물은 존재했을지 몰라도 우리 같은 육상 동물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도 지구상의 생물 종이 반 이상 사라지는 대규모의 멸종이 수차례 있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광합성 박테리아는 지상의 식물로 발전하고 지구 대기에 산소를 축적했다. 우리 또한 격변하는 지구 환경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종의 후손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엘리 위젤은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고,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한다. 자연은 인간사에 무관심하다는 뜻이겠다. 하늘이 햇빛과 비를 내리는 것은 인간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진이나 지진해일(쓰나미)이 오는 것도 인간을 괴롭히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안이 되거나 고통이 무마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시점에 그 자리에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하필이면 아픈 수난의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아이티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돌아온 홍용기 소방위에 관한 동아일보 기사를 읽고 부끄럽고 아픈 마음에 나는 나이 먹고 처음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2008년 중국 쓰촨(四川) 성 지진 때도 구조 활동을 했다는 홍 소방위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자체가 정말 복 받은 일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홍 소방위처럼 놀라운 이타심을 발휘하는 존재로 진화했다는 사실에서나 위로를 받아야 할지. 하지만 천지는 우리의 고통에 무심하다. 아니면 무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더 큰 목적이 있어서인가?

김희준 서울대 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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