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홍승우]국가경쟁력 가속시킬 중이온가속기

  • Array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2008년 과학계 10대 뉴스 중 1위는 KSTAR였다. KSTAR란 세계 최고 성능의 초전도자석을 이용한 핵융합연구장치다. 12년간 40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 선진국도 만들기 어려운 최첨단 장치를 우리 기술로 제작했다. 이런 성공의 뒤에는 우리나라 중공업체의 기술력이 있었다. 현대 두산 삼성 등 대기업을 비롯해 69개 기업체가 건설과정에 참여했다. KSTAR의 건설과정 및 운영과정에서 얻은 기술은 국내 원천기술 개발의 초석이 되고 있다.

2009년도 과학계 10대 뉴스 중 1위는 나로호였다. 나로호 개발에는 7년의 기간과 50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갔다. 나로호 개발에 참여한 국내 기업은 대한항공 한화 두산 등 160여 개 업체다. 설계 제작 조립 등 전 과정에 국내 기업체가 참여했다. 아쉽게도 위성이 궤도에 진입하진 못했지만 기술 보완을 거쳐 금년에 다시 발사에 나설 계획이다.

이런 거대과학 시설로 현 정부가 야심차게 계획하고 있는 것이 세종시에 건설될 중이온가속기다. KSTAR는 궁극적으로 인공태양을 만들어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연구장비이고, 나로호는 우주시대 개척을 위한 것이다. 중이온가속기는 기본적으로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것으로 발표된 예산은 4600억 원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이 세 가지 사업은 모두 수천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거대과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주 기초기술연구회 초청으로 스위스 제네바 소재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롤프디터 호이어 소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호이어 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속기란 한마디로 슈퍼현미경이다”. 즉, 작은 미시세계를 들여다보는 장비다. 보고자 하는 물체가 작을수록 현미경은 성능이 좋아야 한다.

1901년부터 지금까지의 노벨물리학상 중 약 20%가 가속기와 관련되어 있다. 입자나 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까울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가 가속기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나 이온은 에너지가 높기 때문에 물체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어서 미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 중이온가속기는 희귀동위원소를 발생시켜 원소의 기원을 연구하며 신소재나 바이오 물질의 미시세계를 연구하는 장치다.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하면 인체 내에 깊숙이 위치한 암세포만 파괴할 수도 있다. 일본과 독일에서는 지금까지 3000명 정도의 암환자를 중이온가속기로 치료했다. 인체에 칼을 대지 않고 중이온 빔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무통무혈의 치료법이다. 수술을 하지 않으니 입원이나 회복 기간도 필요 없다.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하면 나노보다 더 작은 크기의 미세구조물을 가공할 수 있어 차세대 반도체 공정 및 집적회로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원자로보다 훨씬 안전성이 큰 토륨을 이용한 원자로 개발도 연구할 수 있고, 방사능폐기물 처리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다.

KSTAR나 나로호와 마찬가지로 가속기 건설은 국가의 산업기술 경쟁력을 높인다. 첨단기술을 집대성한 종합과학기술 장비이기 때문에 건설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정부가 설계 중인 중이온가속기는 발생할 수 있는 희귀동위원소의 종류와 양에서 단연코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과학자들이 앞 다퉈 이용하고 싶어 하는 시설이 될 것이다. 이미 우리가 계획 중인 중이온가속기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성과를 내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미래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거대장비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