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그리스의 추락’이 던지는 경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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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명의 요람이었던 그리스가 요즘 유럽의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그리스의 재정악화로 전체 EU 경제가 금융 불안과 신뢰 하락에 빠졌다. 최근 각국 통화에 대한 유로화 가치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지난해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는 12.7%, GDP 대비 국가부채는 112.6%였다. 재정적자 비율은 유로를 사용하는 유로권 평균(6.4%)의 2배이고, 국가부채 비율은 이탈리아(114.6%)에 이어 EU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지난해 말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낮췄다.

그리스의 재정악화와 경제위기를 불러온 주요 원인은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뿌리 깊은 부정부패, 과다한 사회보장비 지출과 취약한 제조업 경쟁력 등이었다. 그리스는 1980, 90년대에 좌파 정부가 장기집권하면서 공공부문 규모가 팽창했다. 이 나라 공공부문 종사자의 약 25%가 과잉인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강성 노조가 정권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력이 커 구조개혁이 힘들다. 이해집단들은 걸핏하면 불법폭력 시위로 주장을 관철하려 하고, 법을 우습게 보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그리스에서는 식당을 여는 데도 공무원에게 1만 유로(약 1620만 원) 이상의 뇌물을 건네야 할 정도다. 많은 공무원이 오후 2시면 퇴근해 부업을 하지만 여기서 번 돈은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는다. 몸이 아파 공공 의료기관에 갈 때도 별도의 돈 봉투를 의사에게 건네야 한다. 그리스의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GDP 대비 1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2%보다 2.8%포인트 높다. 이러고도 경제와 재정이 제대로 굴러가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리스의 추락’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이 있다. 한국의 지난해 GDP 대비 재정적자는 3.2%, 국가부채비율은 35.8%로 아직은 재정건전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이 빠른 속도로 나빠졌다. 최근 10여 년 동안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은 팽창했고 좌파 성향 공무원과 교사 집단의 입김이 커졌다. 공직사회의 부패를 보여주는 사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온다. 법치(法治)를 무시하는 풍조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리스가 요즘 겪는 어려움을 거울삼아 우리 사회도 공공부문의 방만과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는 노력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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