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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12일 20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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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효순 미선 양’ 사건 때 촛불을 든 채 광화문을 뒤덮은 인파가 만들어 낸 분위기는 유력 주자가 아니었던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일조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불러온 반(反)탄핵 열풍, 2008년의 광우병 괴담….
이들 사건은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라는 점 외에 복잡계적인 현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세한 변화가 증폭 과정을 거쳐 급진적인 단절을 가져온 것이다. 물이 일순간에 얼음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복잡계 과학의 도움 없이도 우리는 이런 현상을 이미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혁명이나 전염병의 확산 과정, 새로운 유행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2002년부터 이곳 한국사회에서만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걸까.
필자가 찾아낸 답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감성적 네트워크가 발달한 사회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복잡계 현상은 구성원 간에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한 창발성이 필요하다. 한국의 사이버스페이스처럼 구성원끼리 정보의 교환이 빠른 곳은 없다.
더욱이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대단히 감성적이다. 또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변화로 기존의 질서가 와해되고 있는 불안한 사회다. 복잡계 현상은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곳에서 시작된다. ‘사이버 인육수색’ 등 외신을 통해 전달되는 중국의 누리꾼 문화도 우리의 길을 따라오는 것 같다. 네트워크의 힘이 거리로 나왔을 때 중국 정부를 향할지, 외부를 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돌아보면 우리는 붉은 악마 신드롬 이후 점차 징후가 뚜렷해지는 ‘네트워크 사회’의 특징에 대해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 나가는 중이다.
초기에는 과도한 의미 부여가 많았다. 붉은 악마 신드롬을 마땅히 설명할 길을 못 찾던 학자나 언론들은 “단군 이래 최대 사건 중 하나”라며 흥분했다. 권위주의에서 민주화의 이행을 경험한 기성세대는 효순 미선 양 사건 이후 계속되는 촛불집회를 ‘거리의 정치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네트워크 사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인 사람은 소수였다. 이런 변화를 눈치 채고 이용하는 ‘선각자’(?)도 생겨났다.
기업은 히트 상품과 유행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네트워크의 속성을 이용한다. ‘바이러스’ 마케팅이다. 또 광우병 괴담을 만들어 대통령 탄핵 같은 큰 질서의 변화를 단번에 가져오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광우병 괴담이 토론으로 대체되면서 정부의 정책 실패를 짚어내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바뀌어가는 것도 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학습 과정으로 보면 수업료가 아깝지 않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힘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났던 붉은 악마 신드롬과 파괴적인 에너지가 넘쳐났던 광우병 괴담에서 보듯 두 얼굴을 함께 지녔다는 것을 이제 막 경험했을 뿐이다.
다만 네트워크 사회에 ‘천사와 악마’의 속성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열린 이성’을 가진 사람이 늘어날수록 성숙한 민주주의로 한발씩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