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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24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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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끝내 납북돼 비명에 죽은 뒤 그 말은 유족들과 많은 문인의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혔다. 한 알의 ‘삶은 계란’이 지닌 일상적 이미지 때문인가. 6·25전쟁과 관련된 문인들의 기억들 중에는 그보다 더 처절하고 참혹했던 일이 많은데도 듣는 이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들기로는 그 삶은 계란 이야기를 덮을 것이 드물다.
전쟁 발발 56주년, 또다시 돌아온 ‘6·25’를 맞으며 떠오른 삶은 계란 한 알의 사연이 새삼 마음 아리다. 그러나 56년이란 세월의 힘은 너무나 거대하여 이제는 ‘돌아온 6·25’라는 표현을 쓰기조차 자못 어색하다. 해가 흐를수록 그 참혹했던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것만이 과거”라는 옛 철인의 말을 빌리자면 6·25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기억’은 직접 경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는 간접적으로 기억한 이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현재의 우리가 6·25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절로 선명해진다. 우리 민족이 6·25의 경험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바로 그것을 제대로 찾고 파악해 제대로 기억함으로써 ‘6·25를 진정한 우리 민족의 과거’로 만들어야 한다. 그 일은 그 시대에 직접 전쟁을 겪었던 이들만의 몫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뒤에 있는 후세인들이 반드시 치러야 할 책무에 속한다.
몹시 괴롭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다는 것은 때로 건강에 유익하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도 아닌 거대한 민족공동체가 고통과 수난의 역사를 덮어 놓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마음 편안해지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무섭다.
전에 ‘선조실록’에서 임진왜란 때의 일을 읽다가 무릎을 친 일이 있다. 해전에서 승승장구하던 이순신의 수군과 달리 육전에서는 패전을 거듭하던 시절,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가 조정의 신하들을 향해 대놓고 질책했다. “당신들은 고구려 때는 그토록 전쟁을 잘하던 민족이었는데 지금은 어째서 이런가.” 명나라 장수가 기억하는 ‘고구려의 영광’을 우리 민족은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그 처절한 고통을 겪고도 용약 분발하여 ‘고구려의 영광’이란 기억을 되찾지 못한 결과, 300년 뒤에는 끝내 일본에 중병이 든 허약한 병자처럼 맥없이 나라를 잃었다.
현재 우리 민족이 활기차게 세계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첨단산업, 문화,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한류 현상’까지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가슴이 뜨겁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일까. 이민족의 압제와 6·25의 참극으로 겪어야 했던 처절한 고통과 절망과 위기의식이 우리의 핏속에 사장되어 있던 ‘고구려의 영광’이라는 유전자를 홀연히 깨워 일으킨 것일까.
그러나 나는 우리 민족이 누렸던 영광의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뒤따라 떠오르는 두려운 의문이 있다. 인류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로마제국, 칭기즈칸의 원…그토록 위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그들의 힘과 기백과 능력은 대체 왜 어째서 그토록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약진하고 있는 때일수록 우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모두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기억이 주는 교훈과 힘을 우리가 이루어야 할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송우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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