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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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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씨는 강의를 들으며 생전 처음 미술관에 가 보았다. 로댕의 ‘지옥의 문’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미술관에 들어설 때부터 그것만 보였어요. 그렇게 오래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들었는데(1880∼1917) 그러고도 완성 못하고 죽었다니…. 그 시간만으로도 위대하다고 생각했어요.”
윤 씨가 받은 학교교육은 중학교가 마지막이다. 부모는 그가 초등학생 때부터 집안 형편상 고등학교는 보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고등학교도 못 갈 거…’라는 생각에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했던 중학교 3년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나한테 철학이 가당키나 한 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두려웠던 그는 강의를 들으며 내가 아닌 남,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타인의 고통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저녁 시간 동료 노숙인들의 몸을 녹여주기 위해 차 배달을 나가기도 하고, 자원봉사를 나온 대학생을 붙들고 용기를 내어 수업 내용을 질문해 보기도 했다. “학생, 사형제도에 대해서 좋다고 생각해, 나쁘다고 생각해?” “글쎄요.” “나는…반대해.”
취중 욕지거리가 아닌 대화로, 내 문제가 아닌 세상일에 대해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문을 열게 된 것이다.
성프란시스대 인문학 과정을 꾸려가는 성공회 임영인 신부가 줄곧 붙들고 있는 화두는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이다. 반짝 일어섰다가도 또 무너져 내리는 좌절을 반복하는 빈민들의 삶을 20여 년간 지켜보며 재정 지원이나 구조 개혁만으로는 삶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 사람 누구에겐들 변화가 쉽겠습니까. 하지만 끔찍하고 헛껍데기이더라도 자기를 들여다보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았어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철학이나 문학 같은 인문학 공부였습니다.”
자신을 들여다본 건 학생들만이 아니다. 철학을 강의한 우기동 교수는 “인문 정신이 부활해야 할 곳은 우리가 살아가는 거리라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인문 정신의 요체는 내 삶의 존엄을 아는 거고, 나만큼 존엄하고 동등한 가치를 가진 타자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노숙인 학생들의 바람이 그거였어요. ‘세상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요.”
상아탑이 아닌 인생의 벼랑 끝에서 체득하는 ‘인문정신’. 성프란시스대 학생들에게 그것은 학술용어가 아니라 ‘내게도 남에게도 닫혀 있던 문’을 스스로의 손으로 조금씩 열어 가게 해 주는 삶의 열쇠다.
“…우리는 ‘공감’이라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공감은 존경하게 하며,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며, 동정하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불쌍한 사람입니다.” (한 노숙인 학생의 ‘독후감’ 중에서)
정은령 문화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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