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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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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국정원 도청 수사가 갈수록 가관이다. 8월 초 국정원이 도청 사실을 고백한 후 김대중 정권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임동원, 신건 씨는 “(우리 때는) 도청이 없었다”며 집단 반발했다. 그러나 당시 2인자였던 김 전 차장은 검찰에서 도청을 시인했다. 정보기관의 전직 원장과 차장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모습을 국민은 어떻게 볼까. “국정원은 콩가루 집안”이라는 개탄의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도청은 앞으로 수사 결과에 따라 전모가 밝혀지겠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자격 미달인 국정원장들이 너무 많았고, 이것이 오늘날 총체적인 ‘부실 국정원’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점이다. 원장 자리에 정치적으로 엄격히 독립을 지키고, 권력의 외압이 있더라도 할 일, 안 할 일을 분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인물을 앉혔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보기관의 장(長)은 국익(國益)을 위해 정보를 취득, 분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밀공작도 불사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다. 더욱이 우리처럼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선 그 임무가 참으로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주로 국내정치적 고려에 따라 국정원장을 임명해 왔다. 정보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은 뒷전인 적이 많았다.
1961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이래 이 자리를 거쳐 간 28명(직무대행 포함) 중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임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는 최고통치자가 원하는 정보를 물불 안 가리고 뽑아낼 수 있거나, 대선에서 크게 기여를 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보내졌다. 이런 잘못된 정실인사와 엽관주의가 오늘의 국정원 위기사태를 낳은 근본 원인이다.
이번 불법 도청 파문은 겉으로 드러난 일부분일 뿐 그동안 ‘부적격’ 국정원장들이 남긴 부정적 여파는 넓고도 깊다. 역대 정권마다 추진한 국정원 개혁이 실패로 끝났던 게 단적인 예다. 정보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전혀 없는 국정원장이 휘두른 개혁의 칼은 성과는커녕 조직의 역량과 사기만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정치적 배려로 장(長)이 된 사람일수록 국익(國益)보다 정파적 이익에 봉사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인사(人事)의 공정성 시비는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사태가 제대로 수습돼 국정원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려면 전직 국정원장들이 먼저 반성과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재직 중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자복해야 한다. 그것이 한때 조직을 이끌었던 수장(首長)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내가 안고 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정원장의 자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원 내부의 목소리부터 경청할 것을 권한다. 음지(陰地)에서 일하는 그들은 “이제는 우리도 정말 존경받을 수 있는 원장을 갖고 싶다”고 소망한다.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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