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그 아름다운 삶]'은행골 우리집' 정채진씨

  • 입력 2000년 5월 21일 20시 37분


정채진(鄭彩珍·44·여)씨가 김진수군(19·가명)을 처음 만난 건 15년전 경기 성남의 ‘별동네’에서였다.

별동네 달동네…. 서울의 철거민들이 쓰레기차에 실려 쫓겨나 살던 곳. 그 곳에서 정씨는 파출부 어머니와 청소부 아버지를 둔 아이들을 위해 ‘하늘어린이집’을 운영했다. 어린이집을 하다가 초등학생들이 방과후 방황하는 것을 본 정씨는 공부방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이 “안녕히 계셔요” 인사하고도 집에 가지 않는 것을 보고나서는 91년부터 아예 함께 살기로 했다.

특별한 결단은 없었다. 하루 종일 밥을 굶는 아이들, 매 맞을까봐 집에 못 들어가는 아이들, 병석에 누운 할머니와 둘이 살다 혼자된 아이들이 언제나 눈에 띄었고 그들과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갔다가 밤중에 다시 뛰어 왔어요. ‘집에 쥐가 나왔어요’ ‘무서워요’‘불에 데었어요’…. 아무도 없이 이렇게 방치된 아이들과 함께 살지 않고 어떻게 배기겠어요?” 정씨는 반문했다.

정씨는 남편인 김광수(金光洙·42)목사와 함께 23명으로 이뤄진 가정(그룹홈)을 이끌고 있다. 아이들의 희망에 따라 ‘은행골 우리집’으로 이름지었다. 경기 성남의 은행2동과 수진2동에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얻어 각각 8명과 15명이 산다.

정씨가 낳은 두 아이를 포함해 초등학생부터 중고교생 대학생까지 한 식구다. 이혼한 부모가 버리고 간 아이, 아버지의 극심한 폭력 때문에 피신한 아이, 노숙자 자녀….

아이들이 꼭 엄마 아빠와 살아야 행복한 건 아니다. 어떨 땐 부모보다 나은 어른을 만날 수도 있다.

은행골 우리집 아이들은 “목사님” “사모님” 하면서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학교에서 일어난 시시콜콜한 일들을 얘기하고, ‘형제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며 어려운 가정 형편을 아는 만큼 절제할 줄도 안다. 이미경양(가명·15)은 “제가 사모님을 만난 건 기적이예요. 만일 못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라고 말했다.

정씨는 “결손가정 해체가정에서 보살핌 없이 자란 아이들은 십중팔구 나쁜 길로 빠진다”며 “다른 아이들이 거리를 방황하는 동안 자신의 자녀만 보호한다고 정말 안전할 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어릴 때 가출해 호프집에서 먹고 자던 아이들이 일으킨 불로 수십명의 청소년들이 죽은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이 떠올랐다.

은행골 우리집은 ‘노숙자 자녀 쉼터’로 보건복지부에 등록해 재정의 30% 정도를 지원받고 나머지는 개인 후원 등으로 꾸려가지만 부족한 건 여전하다. 그전에는 정부의 도움도 없이 교회 지원과 개인 후원만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정씨는 지금 생각하면 정신이 아뜩하다고 한다.

은행골 우리집은 지난달 70여 그룹홈과 ‘전국 아동청소년 그룹홈 협의회’를 구성했다. 전국에는 10명 안팎의 아이들을 양육하는 그룹홈이 100여개 있으며 대부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협의회는 그룹홈을 양성화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은 매년 늘고 있으나 이들은 고아원 등 시설에 가기 싫어 하기 때문에 위탁가정이나 그룹홈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대규모 시설에 중점을 두고 있어 그룹홈이 확산되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인식이다.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이태수(李兌洙)교수는 “아이들에게는 70∼80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시설보다 가정같은 분위기가 좋다”며 “세계적으로도 아동양육은 고아원보다 가정위탁이나 그룹홈으로 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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