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양승함]5·9대선과 정치패러다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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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철학 논리 보여주지 못한 대선 유력후보 TV토론
선거운동 계속될수록 지역감정에 호소하고 진영논리로 회귀하는 모습
새 대통령의 첫 과제는 국민통합… 포용-관용의 패러다임 수용하고 경쟁자의 정당성 인정해야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선거이다. 5·9대선은 4·19혁명 이후 7·29총선거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12·16대선에 버금가는 정치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국민의 주권적 저항운동에 의해 치러지는 선거라는 뜻이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에 항거한 시민 불복종 운동과 차이가 있다면 이번 대선은 약 6개월 동안 연인원 1500만여 명의 국민이 평화적인 시민명예혁명의 결과로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이다. 따라서 5·9대선은 헌정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파문에 의해 실시되는 조기 대선 이상으로 새로운 시대적 염원과 과제가 반영돼야 하는 선거이다.

돌이켜 보면 4·19혁명에 이은 7·29총선거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민주적 선거라는 칭호에도 불구하고 정국 불안정으로 5·16군사쿠데타를 초래했으며, 1987년 12·16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는 야권 지도자의 분열로 군사정권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했다. 이번 5·9대선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이 과연 새로운 시대정신을 발휘하여 산업화와 민주화를 뛰어넘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을 닦을 수 있을지 또 하나의 의문으로 남는다. 그 어느 선거 때보다 후보자들의 면면이 드러난 TV토론은 실망스럽게도 유력 후보자들이 국가 비전과 철학 그리고 정책적 논리가 결여된 것을 보여줬다.

5·9대선은 지역주의와 이념적 진영논리보다 세대별 지지율이 결정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그러나 호남과 충청권의 후보자가 없기 때문에 지역주의가 완화돼 나타난 것이지 후보자들은 여전히 각 지역의 맹주가 되려고 지역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이념적 진영논리는 처음에는 보수가 지지할 만한 후보가 없어서 사라지는 듯했으나 선거 막바지에 와서는 다시 진영논리로 회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세대별 지지율 차이는 이념적 진영논리와 중첩돼 작용하고 있다. 후보자들이 뒤늦게 통합정부론을 내세워 협치의 시대정신을 발휘하려 하지만 이 또한 정치공학적 선거 전략에 불과한 듯하다.

5·9대선을 맞이하는 대다수 국민은 진정한 새 정치를 갈망하고 있다. 과거 분열과 배제의 정치를 종식하고 포용과 관용의 정치를 희망하고 있다. 지역·이념·세대·계층으로 갈라진 사회균열 구조를 교묘히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분열과 배제의 정치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의 공과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과 집단의 지지에 의존하고 다른 집단을 소외시킴으로써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지배연합을 구축해왔다. 대통령은 정치의 정점에서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소홀히 하고 국민을 편 가르는 식의 분열과 배제의 정치를 해왔다.

새 대통령은 과감하게 포용과 관용의 정치패러다임을 수용해야 한다. 권력 남용과 국정 농단, 경제적 양극화, 사회 부패 부조리는 당연히 척결돼야 한다. 그러나 적폐세력, 패권세력 등과 같은 집단화된 용어를 사용하면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며 집단적 저항에 직면해 결국 정치는 분열과 대립의 악순환에 빠질 것이다. 촛불시위와 태극기시위 간 적대적 감정은 이러한 분열과 배제의 정치로 잉태된 산물이다. 새 대통령이 사회균열 구조로 인한 적대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포용과 관용의 정신으로 통치연합을 형성해야 한다. 부패·부조리·불의는 법치주의에 입각해서 개별적으로 개혁 대상이 된다는 것을 시사해야 할 것이다.

포용과 관용에 입각한 통치연합은 지배연합과 달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요소와의 협력을 통해 통치행위를 할 수 있는 협치 구조를 의미한다. 포용과 관용은 권력 경쟁자의 존재와 정당성을 인정하는 정치문화에서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 경쟁세력과도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용과 관용의 정치를 하다 보면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통합이며, 통합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이뤄지면 정책적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5월 9일 당선되는 새 대통령은 성공국가의 신화를 지속가능하게 할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 포용과 관용의 리더십이야말로 경제·안보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여 성숙한 선진사회로 진입하는 필수불가결한 정치패러다임이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5·9대선#정치 패러다임#19대 대선#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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