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이 책!]평범한 일상의 비범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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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커다란 사람 앞에 가면 긴장한다. 내 바보 같음을 숨기려고 해도 전부 꿰뚫어보는 것 같고 그렇다고 대놓고 바보처럼 굴 용기도 없어서 행동이 어색해진다. 사자 앞에서 몸이 굳은 작은 초식동물이 된 기분, 살면서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책을 읽다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노 요코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가 쓰고 그린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유명한 그림책이고 일본 정부의 훈장까지 받았다. 제목이 ‘사는 게 뭐라고’. 초월적인 내용인가 싶었다.

그리고 난 곧 아침에 일어나기 귀찮아 발로 커튼을 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친구가 여자친구랑 헤어진다고 하자 그녀가 잘 만들던 요리의 레시피를 알기 위해 ‘헤어진다며? 그럼 간 페이스트 만드는 법 좀 가르쳐 줘’라고 전화를 걸었다는 고약한 이야기도 있다. 명절에 비디오를 빌리러 가다가 ‘저 할머니 명절에 비디오나 빌리네’라는 시선을 받을까 무서워 못 빌리고 돌아온 얘기, ‘욘사마’에 빠진 이야기까지 전혀 초월적이지 않은 글이 이어졌다. 그리고 중간 중간 같은 무게로 이혼을 두 번 한 것, 아들과 10년간 말을 하지 않은 것, 그런 이야기가 꽁치에 오렌지 주스를 넣어 밥을 지은 이야기와 함께 불쑥 나왔다.

생각해 보면 전부 같이 겪었을 것이다. 오렌지 주스를 넣어 밥을 하다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르고, 대단한 작업을 한 날 아침에 발로 커튼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음과 동시에 자식과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게 되고 그런 것이 전부 함께 일어났을 것이다.

사노 요코 정도면 승천해버려도 될 텐데. 하늘이 얼마나 푸른지, 가끔 부는 바람은 얼마나 달고 꽃은 아름다운지, 그런 삶의 발견에 대해서만 한가롭고 우아하게 얘기해도 될 텐데, 그는 검은 흙 속에서 발견하는 벌레와 손에서 나는 쇠 냄새에 대해 이야기했다. 잠시 오는 깨달음 뒤에 어김없이 돌아가게 되는 한심함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징그러움에 대해, 늙는 것의 끔찍함을 이야기했고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무슨 말을 해도 사노 요코가 비웃을 준비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의 원제는 ‘쓸모없는 나날’이다. 역시 사자는 용감하다.

 
오지은 가수
#사노 요코#사는 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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