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잃어버린 10년’에 대하여

  • 입력 2007년 6월 29일 1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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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조용필은 ‘어제 오늘 그리고’에서 어제와 오늘,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잃었느냐고 노래한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민주화 20년, 진보정권 10년의 세월에서 무엇을 찾고 잃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우리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어떤 리더십을 선택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모여 과도기의 갈등과 혼란에서 벗어나 미래의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멀쩡한 경제’라고요?

‘잃어버린 10년’에는 부분을 강조하다가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경제가 침체했다고 민주화의 진전 등 다른 가치마저 몽땅 잃어버린 것으로 몰아가느냐는 불균형의 문제다. 담론(談論) 자체가 경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는 해도 얼핏 비애감(悲哀感)마저 느껴지는 ‘잃어버린 10년’은 정치적 구호로도 제격이니까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 점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되찾고 외환위기에서 경제를 되살린 10년이다”라고 반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멀쩡한 경제’라며 “민주세력 무능론(無能論)은 중상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전현직 대통령이 나섬으로써 경제 담론은 단박에 정치 담론으로 변질됐다. 이렇게 되면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정치적 수사(修辭)만 부각된다. 공론(公論)은 공론(空論)이 되고 문제 해결은 더욱 멀어진다. 그 점에서 DJ는 침묵하는 편이 나았고, 노 대통령은 억지를 부리지 말았어야 했다.

몇 개의 지표를 보자. 한국 중산층의 비율은 1996년 55.5%에서 2006년 상반기 43.7%로 줄었다. 빈곤층은 11.2%에서 20.1%로 10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상류층은 20.1%에서 25.3%로 늘었을 뿐이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 소득분배지표인 지니계수의 경우 1995년 0.284에서 2004년 0.310으로 악화됐다(통계청 자료). 노 정부 4년 동안 평균경제성장률은 4.25%로 같은 기간 세계평균경제성장률 4.9%(국제통화기금 자료)보다도 낮았다. 이런 데도 ‘멀쩡한 경제’라고 할 수 있는가.

양극화의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채 성장잠재력마저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고용이 전체 고용의 절반을 넘어선 지 오래고, 청년실업은 만성화(慢性化)됐다. 사회적 불안정성은 갈등으로 이어지고 이를 완화하는 데에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체제는 우리가 싫다고 거스를 수 없는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잃어버린 10년’은 과거 담론이 아니라 미래 담론, 즉 활력을 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되살리느냐는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성장과 민주화를 묶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찾는 공론으로 진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전현직 대통령은 또 다른 인식의 불균형으로 그것을 가로막았다.

중상모략인가 자업자득인가

2년 전 기회가 있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첫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때맞추어 한국 사회의 대표적 보혁(保革) 인사들이 한데 모여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협약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노 대통령은 그때 사회협약을 ‘내셔널 어젠다(국가 의제)’로 내걸고 노사정(勞使政)을 설득하는 한편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끈기 있는 노력 대신 대연정(大聯政)으로 중심 의제를 바꾸었다. ‘연정 기획’이 실패로 끝난 뒤 다시 ‘국민 대통합 연석회의’ 카드를 꺼냈으나 이미 추동력(推動力)을 잃은 의제는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대통령이 내놓은 의제가 무엇인가. 개헌이고 기자실 폐쇄이고 선거법 시비다. ‘잃어버린 10년’은 그렇게 해서 일반적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중상모략이 아닌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셈이다.

오는 겨울 대선이 끝나면 과연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을까? 민주항쟁 20주년 6월의 마지막 날에 떠올려 보는 물음이자 희망이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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