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산책]이영이/日경제-다카노하나 ‘무기력 닮은꼴’

  • 입력 2002년 7월 23일 18시 48분


일본 스모의 천하장사격인 요코즈나(橫綱)로 8년간이나 군림해온 다카노하나(貴乃花·29)가 진퇴의 갈림길에 섰다. 작년 도쿄(東京)에서 열린 여름 스모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부상으로 1년 이상 쉬고 있기 때문.

일본스모협회의 요코즈나 심의위원회는 22일 “9월 8일 열리는 가을대회에 출전하든지, 아니면 깨끗이 물러나든지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다카노하나는 스모계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1994년 요코즈나에 오른 그는 모두 22회의 우승을 기록해 하와이 출신 역사(力士)들이 주름잡던 스모계에서 일본인의 자존심을 지켰다. 또 잘 생긴 얼굴과 근육질 몸매로 여성팬들을 사로잡았고 유명 연예인들과의 염문도 끊이지 않았다.

작년 여름 그가 무릎 부상을 딛고 우승하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총리배를 수여하면서 “감동했다”고 말해 팬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부상이 쉽게 낫지 않아 연속 7개 대회에 휴장했다. 이는 일본 스모계의 최장기 휴장 기록이다. 물론 그래도 요코즈나의 지위는 유지되고 282만엔(약 2800만원)의 월급도 나온다.

그가 대회에 불참하면서 스모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하와이 출신 역사인 무사시노마루(武藏丸)가 독주하자 모두들 “다카노하나가 있었다면”이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8월이면 다카노하나도 30세다. 스모 선수로서는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나이다. 이 때문에 그의 부활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매번 출전을 벼르다가도 끝내 포기해 팬들을 실망시키는 ‘힘 빠진 거인’ 다카노하나. 그의 모습을 보면 일본 경제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1990년대 초반 급격한 거품붕괴 이후 개혁에 대한 단안을 내리지 못한 채 “조금만 버티면…”이라며 꾸물거려 온 ‘침몰하는 경제대국’의 모습이 중첩된다.

이영이 도쿄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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