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의 첨예한 대치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법 표결이 진행된 3월 2일 국회 본회의장.
한나라당 나경원(羅卿瑗) 의원은 전자투표기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회의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반대’를 찍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러나 찬성 쪽으로 당론을 정한 당 지도부의 표정은 살벌했다.
‘그래도 내가 원내부대표인데 당론을 거슬러서야….’
나 의원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기권’을 선택했다. 한숨이 새나왔다.
초선 의원으로 국회에 첫 발을 내디딘 지 1년. 나 의원은 소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토로했다.
“내 목소리를 못 냈어요. 주저주저하면서 남의 의견을 따라갔죠. 딱 부러진 결정 대신 ‘장점은 어떻고 단점은 저렇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많아요.”
지난해 5월 한나라당 당헌당규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 의원은 인터넷 투표로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방식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그러나 몇몇 의원이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는 분위기에 밀려 반대의견을 접었다.
“지난해 7월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를 막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점거농성을 할 때였어요. 한 여당 의원이 ‘당신처럼 순한 사람이…. 억지로 등 떠밀려 온 것 아니냐’며 안쓰러워하더군요.”
나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공무원과 시민단체가 뽑은 우수위원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그는 ‘초치기의 결과’라고 부끄러워했다.
“5월에 국회가 개회했는데, 인기 있는 상임위에 가려는 의원들의 물밑 경쟁 때문에 배정이 지연돼 상임위 배정이 7월에 이뤄졌어요. 잘 모르는 정무위원회여서 업무 파악이 어려웠죠. 국감 전날 저녁 급하게 자료를 요청해서 어설프게 준비한 적도 있어요. 제가 닦달한 공무원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당시 “내가 일을 못 하기 때문에 전문성과 관계없는 상임위 배정을 받은 거냐”고 선배 의원들에게 묻자 “정치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국물도 안 떨어진다”는 면박성 충고가 돌아왔다.
나 의원은 “국회에 여성 의원들이 많아졌지만 아직은 남성적인 시각 위주의 선입견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자신의 외모와 의정활동을 연결시키는 주변 시각 때문에 ‘얼짱 알레르기’에 걸렸던 것이 단적인 예. 이 때문에 한때는 방송 카메라를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는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해 당내에서 10개 가까운 직함을 갖고 활동해 너무 바빴던 점도 의정활동의 깊이를 더하지 못한 원인이 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나 의원은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문성을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나경원 의원은…▼
한나라당 17대 비례대표 초선 의원(42세).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 생활을 하다 2002년 이회창 대통령 후보 특보로 정치에 입문했다. ‘정치권의 얼짱’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용모의 소유자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