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인류 역사
인류학자와 고고학자 10년 협업… 불평등의 기원 찾아간 지적 여정
‘역사는 단선적 흐름’ 통설 반박… 인류의 선택이 실재했다는 증거
농업혁명은 3000년의 실험 과정… 복잡한 사회=불평등? 근거 부족
계몽주의 자유-평등-박애 개념… 아메리카 선주민 사상 영향 커
‘모든 것의 새벽’은 선사시대 유적 등을 토대로 통념이 돼 버린 단선적 문명 발전사를 반박한다. 사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르헨티나 리오핀투라스 암각화. 약 9300년 전 사람들의 손 그림으로 알려졌다. 출처 위키피디아
‘모든 것의 새벽’ 데이비드 웬그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
‘여명기 인류는 작은 무리를 이루며 살았다. 단순하고 평등한 수렵채집사회를 이뤘다. 농업혁명 이후로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계층이 생겼다. 사유재산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불평등이 시작됐다.’
문명사를 다룬 책은 대체로 이런 발전 서사를 따른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모두 이 서사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든 것의 새벽’은 이런 통념을 반박하는 책이다. 수렵채집과 농경의 선후 관계는 단순하지 않으며 농업혁명은 점 같은 순간이 아닌 수천 년에 걸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복잡다단한 인간 역사를 하나의 선 위에 놓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류학과 고고학의 합작품이다. 인류학자 고(故) 데이비드 그레이버 교수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2011년 공동 집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을 비롯해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달아오르던 때였다. 주제는 불평등의 기원으로 잡았다.
10년 가까이 나눈 두 사람의 대화는 900페이지 분량 벽돌책으로 탄생했다. 그레이버 교수는 2020년 탈고 직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웬그로 교수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그레이버와 나는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아야 누릴 수 있는 지적 동료애를 나눴다. 이 책은 그 우정의 결실”이라며 “17∼18세기 유럽 철학자들이 만든 낡고 지루한 문명사를 바로잡고 싶었다”고 했다.
● “불평등은 언제나 존재” ―불평등의 기원을 찾아 떠난 여정 끝에 ‘그런 기원은 없다’라고 결론 내렸다.
“우리는 인류 역사를 ‘성경식’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선한 인간 대 악한 인간’ 같은 도식으로 과거를 단순화한다. ‘순수하고 평등한 사회가 농업의 등장으로 불평등해졌다’거나 ‘인류는 타고나길 잔혹하기 때문에 강력한 국가가 필요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역사는 입체적이었다.” ―초기 인류 역사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회는 하나의 흐름에 따라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웠다. 엄격한 계급제를 갖춘 수렵사회도 있었고, 놀랄 만큼 평등한 농경사회도 있었다. 어떤 사회는 계절에 따라 평등과 위계를 오가기도 했다. 이누이트족은 여름엔 소규모로 수렵채집을 하다가 겨울에는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오랜 기간 오해가 통설로 자리잡은 배경이 궁금하다.
“학자들 책임이 크다. 고고학과 인류학은 지난 30년간 큰 발전을 이뤘지만, 이를 바탕으로 역사 전체를 아우르려는 시도는 부족했다. 그 공백을 다른 분야 저자들이 메웠다. 하라리나다이아몬드 같은 학자들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들도 낡은 이야기를 반복했는 점이다. 경제위기 직후 불평등이 화두가 된 것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불평등의 기원을 검토하게 됐다.” ―불평등의 형태와 강도는 어떻게 변해 왔나.
“불평등은 특정 시점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여러 사회 속에서 늘 존재해 왔다. 중요한 건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다. 어떤 사회는 권력을 경계한 반면 제도를 통해 권력을 정당화한 사회도 있다. 기존 연구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불평등과 위계가 강해졌다고 보는데 이는 근거가 부족하다. 오히려 작은 집단에서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농업은 혁명적 사건이 아니라고 했는데….
“농업은 단번에 ‘발명’된 사건이 아니라 3000년간 이어진 실험의 과정이었다. ‘많은 공동체가 농경과 수렵을 병행했고 그러다 농경을 포기하기도 했다. 역사를 무 자르듯 단계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소유 개념이 싹튼 배경도 농경과 관련이 없다’고 썼다.
“소유 개념은 잉여생산물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생겨난 게 아니다. 오히려 제의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 가장 평등한 사회에서도 ‘성스러운 것’에 대한 소유만큼은 엄격하게 인정한다. 많은 사회에서 ‘신성함’은 곧 ‘영적 존재가 소유한다’는 뜻이다. 이는 보호와 돌봄의 의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 자유와 평등의 뿌리는 선주민 사상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과 아메리카 선주민은 서로의 언어와 생각을 교환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야만인’으로 여겼던 이 선주민들의 지성과 토론 능력에 놀란다. 책은 계몽주의 핵심 개념인 자유, 평등, 박애 역시 선주민 사회의 영향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선주민들이 더 영리해 보이는 것에 ‘일말의 좌절감’을 느꼈다고 썼다.
“북아메리카 웬다트족 추장 칸디아롱크는 17세기 말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다. 그는 유럽 사회의 불평등, 차별, 기독교의 독선을 통렬히 비판했다. 선주민 사회는 누구도 지배당하지 않았고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 개념이 없었으며 굶주린 이웃이 방치되지도 않았다. 그의 사상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 역사가 기록에서 지워진 이유는 무엇인가.
“인종주의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계는 사상의 뿌리가 비(非)백인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 정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선주민 사회에서 자란 유럽인 고아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부모와 재회하고도 다시 선주민 사회로 돌아간 건 ‘인간 관계의 질’ 때문일 것이다. 선주민들은 아이들을 억압하지 않고 애정으로 키운다. 여성의 자유도 훨씬 더 크다. 그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존중과 돌봄을 받는 존재라고 느낀다. 그 감각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 농업혁명은 순간 아닌 과정
상당수 문명서에서 초기 인류는 정치적 의식이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웬그로 교수는 “인간의 생물학적 인지 능력은 30만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현재 인류와 지적으로 비슷했고 정치적 자각도 지녔다”고 했다. 이런 의식을 토대로 여러 사회 형태를 모색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 형태는 주로 언제 등장했나.
“계절이 바뀔 때 사람들은 큰 집단과 작은 집단 사이를 오갔다. 집단 규모와 구성원이 달라지면서 제도도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사회 형태를 추구한 동력으로 ‘세 가지 자유’를 들었다.
“‘떠날 자유, 명령에 불복종할 자유, 사회 질서를 재구성할 자유’이다. 이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이 개념을 후속작 ‘세 번째 자유(The Third Freedom)’에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인류가 어느 시점부터 하나의 사회 체제에 붙들린 이유가 궁금하다.
“인류는 원래 사회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능력(사회 질서를 재구성할 자유)를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능력을 잃게 됐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젠더, 권력관계, 나이, 폭력, 트라우마 등이 얽혀 있다. 현재 상황에 발이 묶이는 이유에 대해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 실험이 가능하다고 보나.
“선주민 사회(외부의 목소리)는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지금도 존재한다. 의지가 있다면 언제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가나 자본주의처럼 당연시되는 환경도 인간의 상상과 선택의 결괏값이다. 이 점을 되새겨야 변화할 수 있다.”
● 역사는 선택이 존재했다는 증거
책 제목은 우리가 아는 유일한 기원은 ‘모든 것의 시작’뿐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웬그로 교수는 “불평등이나 국가의 기원을 단일한 지점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현실의 복잡성을 무시한 일종의 신화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책이 ‘선택적으로 증거를 취했다’는 비판에 대한 생각은….
“진지한 비판이 아니다. 실제로는 기존의 단선적 발전 서사를 반복해온 쪽이 방대한 증거를 무시해 온 셈이다. 우리는 오히려 감춰져 있던 인간 사회의 다양성을 드러냈다.”
―과거를 다루다 보면 때론 과도한 주관 개입의 유혹을 받을 것 같다.
“‘완전한 객관성’이라는 개념은 환상에 가깝다. 사회학자 마이클 부라보이(Michael Burawoy)가 말한 ‘참여적 객관성(engaged objectivity)’을 지지한다. 중요한 건 질문, 출처, 해석을 최대한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책에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
“주요 주장은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다만 확장할 부분은 많다. ‘모든 것의 새벽’은 질문을 바꾸는 책이고, 이 질문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세계적으로 구조적 불평등에 좌절감을 느낀다는 이가 적지 않다. 역사는 절망의 근거가 아니라 선택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다. 지금의 세계 질서는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선택의 결과다. 선택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김영사 제공데이비드 웬그로
1972년 영국에서 태어난 고고학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대와 중국 베이징대 등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1998년부터 UCL 비교고고학 교수로 있다. 저서 ‘무엇이 문명을 만드는가?’(2010) ‘괴물의 기원’(201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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