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바란다 ⑨]공노명/외교 개혁 강박관념 위험

  • 입력 1998년 2월 18일 21시 10분


정권교체에는 개혁과 변화가 따른다. 국민은 그것을 기대하고 새로운 정부를 뽑는다. 이번 우리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의 외압까지 겹쳐 오랜 적폐를 광정(匡正)해 나가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일 것이며 그 천기(天機)를 놓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새로운 정부가 안고 있는 과제는 많다. 그중에서도 경제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올라 그 긴급성이 모든 문제에 우선 하는 듯하나 국가경영전략의 근간을 이루는 또 하나의 골간은 국가안보다. 특히 4강의 이익이 교차하는 한반도에 위치한 우리에게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또한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놓고 냉엄한 국제적 현실은 당사자 해결원칙을 존중하여 우리에게만 맡겨두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작년 10월 독일을 방문했을 때 만난 겐셔전외무장관은 90년 독일통일은 미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가능했다고 말했다. 부시미행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독일통일을 두려워하는 러시아의 반대를 극복하고 소극적이었던 대처영국총리와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수년간 외국의 한국전문가들은 한국이 동맹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명해 왔다. 특히 이러한 지적 가운데 가슴아픈 것은 한국이 너무나 얄팍한 이해타산에서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한다는 것이다. 신의를 존중하는 우리사회 통념과는 동떨어진 평가라고 생각되나 그들에게는 그렇게 비치는 모양이다. 미국공화당의 시각에서 한국관련 글을종종기고하는다리 프랑크는 최근 IMF사태발생후 워싱턴에서 한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정치가가 없다고 지적한 일이 있다. 통상마찰이 있을 경우 우리는 그 내용을 냉철히 살피기도 전에 우선 강대국의 압력으로 매도하고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일이 없었는지 자성해 봐야 한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21세기를 눈앞에 둔 우리는 새로운 시각에서 한일관계를 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우리가 엄연히 점유하고 있는 독도를 필요없이 거론하여 상대방을 자극하고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는 정치가를 견제할 만한 식견을 갖출 때도 됐다. 또한 문화침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피해의식에서 이웃나라와의 문화교류를 부자연스럽게 묶어둔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한일관계도 이제는 보통 나라와의 관계로 정상화할 때가 된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이 바람직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 문서를 서명한 순간부터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만이 한반도 평화안정의 요체인 양 주장하면서 기본합의서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미양국은 4자회담을 제의, 휴전협정을 대치할 평화장치를 논의하고자 했고 우여곡절끝에 4자회담은 드디어 내달 본회담이 열린다. 신정부가 4자회담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6자선언’을 제기하는 것은 자칫 우리와 우방과의 공동전략에 혼선을 가져올 것이 우려되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 한국정부는 4자회담에서 정전협정을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평화체제가 창출될 때 6자회의에서 그 시행을 보장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을 비공식적으로 일본과 러시아에 전달해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한미 한일관계와 동시에 동북아 4강의 나머지 두 나라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 구축의 중요성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옥스퍼드 포카스팅 연구그룹은 21세기 후반에는 중국이 거대한 공룡으로 부상할 것을예측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석유 석탄 산림 등의 자원과 70만명이 넘는 일류 과학두뇌집단을 보유하고 있는 강대국 러시아와의 관계강화에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외교교섭창구의 단일화, 대통령이 주재하는 외교안보회의, 국제기구에의 활발한 참여, 중동지역에 대한 에너지 외교강화, 정상외교에 따른 과다 비용지출 문제 등도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끝으로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은 단락(短絡)적 중론의 압력에 영합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꾀하는 혜지(慧智)와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경제위기를 하루속히 극복하고 21세기 우리나라와 민족이 크게 도약하는 기반이 다져지기를 바란다. 공노명<전외무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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