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종교 집단? 게이머들 어긋난 팬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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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일 12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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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의 상용화 서비스 시작과 아이온 2.5 업데이트까지, 한국 MMORPG 시장이 한강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 혹한과는 반대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들은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수익을 거둬들이며 순항을 거두고 있고, 간만에 등장한 대작 게임들의 성공에 업계 관계자들 역시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간만에 불어온 호황에 들뜬 업계의 움직임과는 달리,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유난히 각을 세우며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게임시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과거 대전 액션 게임이 유행하던 시절에 버추어파이터 팬과 철권 팬들이 그러했으며, FPS 시장에서는 둠과 듀크 뉴켐 시리즈, 언리얼과 퀘이크 시리즈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이 최근에는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도드라지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온라인게임이 있지만 유독 MMORPG 팬들 사이에서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 팬들과 아이온, 테라 등 국내산 MMORPG를 즐기는 팬들의 대립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2008년에 아이온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당시에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했다. 아이온이 와우의 틀은 유지하고 겉모습만 화려한 '아류작'이라는 평가가 일부 와우 팬들 사이에서 불거지기 시작했고, 이에 아이온 팬들이 반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테라까지 이러한 게이머들 사이의 논란에 휘말렸다. 아이온을 지적했던 이들이 이번에는 테라의 퀘스트 동선 구성과 비교적 빈약한 스토리 텔링, 종족간의 밸런스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테라는 그래픽이 좋긴 하지만 단지 그래픽만 좋을 뿐이다. 게임은 그래픽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덤이었다.

그러면서 아이온과 테라를 비롯한 국내산 MMORPG 게임들은 전부 와우를 따라한 게임이며,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한 게임이라는 평으로 해당 게임의 비평을 마무리한다.

물론, 일부 와우 팬들이 지적한 이러한 아이온과 테라의 단점은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아이온의 개방형 인터페이스는 와우의 그것과 상당히 닮은 면모를 보이며, 월드 맵의 디자인이 와우의 월드맵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테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퀘스트 동선이 불편하다는 지적은 테라를 즐기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개선되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게임의 스토리 텔링이 약하다는 것은 개발사인 블루홀 스튜디오 측에서도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정한 바 있다. 또한, 루팅 시스템이나 지역 이동 방법 등에서도 와우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일부 와우 팬들이 이러한 지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와우 역시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와우 팬들이 '국내 게임들이 와우에서 배낀 요소'라 주장하는 대표적인 콘텐츠인 공개형 UI, 레이드와 루팅 방식, RvR 등의 콘텐츠들은 이미 MMORPG의 선구자 격으로 불리는 게임들이 먼저 선보였기 때문이다.



종족간의 대립과 레이드는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이하 다옥)이, 레이드 루팅 방식은 에버퀘스트가, 공개형 UI는 애쉬론즈 콜과 에버퀘스트가 와우에 앞서 선보인 바 있다. 실제로 와우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당시에 해외의 다옥과 에버퀘스트의 팬들은 와우의 부족한 오리지널리티를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와우의 팬들은 '그러한 점을 더욱 개선해서 편리하게 가다듬었다', '다옥의 그래픽에 비해 와우의 그래픽이 훨씬 뛰어나다'라는 점을 들며 이러한 다옥과 에버퀘스트 팬들의 지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지적을 하는 다옥, 에버퀘스트의 팬들에게 '자기가 즐기는 게임에 대해 너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저렇게 타 게이머들의 자부심을 비판하던 이들이 지금은 타 게임의 팬들에게 '와부심'(와우와 자부심을 합성한 인터넷 은어)이라는 빈정거림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와우 팬들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와우는 다옥, 에버퀘스트와 비교해 월등히 뛰어난 그래픽을 지니고 있으며, 보다 편리한 인터페이스와 더욱 많은 동시접속자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게이머가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배치한 와우의 퀘스트 시스템은 앞서 언급된 두 게임들이 따라갈 수 없는 와우만의 강력한 무기이다. 와우 팬들이 다옥, 에버퀘스트 팬들의 비판에 대응하는 논리도 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같은 논리로 대응하는 아이온, 테라의 팬들의 논리는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이들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다옥과 에버퀘스트의 그래픽을 폄하하며 '게임성이 아무리 좋아도 그래픽이 나쁘면 사람들은 외면할 수 밖에 없다'라는 주장을 하면서도 테라와 아이온은 '그래픽만 좋은 게임이다'라고 폄하를 한다.

에버퀘스트와 다옥보다 더 많은 동시접속자가 나오는 게임이라고 말하며 테라와 아이온에게는 '동시접속자 수가 게임성을 대변해 주지는 않는다'라고 나선다. 같은 사물을 두고 평가를 할 때 말 그대로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셈이다.

와우가 다옥, 에버퀘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아 좋은 점을 차용하고 이를 갈고 닦아 자신만의 색을 갖췄듯이 아이온, 테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게임성을 구축한 게임들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이들 게임의 게임성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이 상대가 즐기는 게임, 자신이 즐기지 않은 게임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선택한 게임이 상대의 게임보다 더 재미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 재미있는 게임을 선택한 내가 상대방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한 사람이다'라는 결론까지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비약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심리학에서도 스스로를 높이기만 하는 것보다 상대를 낮추는 것이스스로의 만족감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현상을 무조건적인 비약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들 게임들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게임이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을만한 장점을 지닌 게임이다. 자신의 즐기는 게임과, 그 게임을 즐기는 자신이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이 즐기는 게임과 게이머의 취향을 먼저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게임은 서로 재미있게 즐기라고 있는 것이지 싸우라고 제작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김한준 게임동아 기자 (endoflife81@gamedong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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