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흥” 호랑이家 슬픈 족보…근친교배로 유전질환 심각

  • 입력 2005년 5월 1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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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 38마리를 포함해 1983년 이후 국내에서 살다 죽었거나 살고 있는 호랑이 59마리의 ‘족보(族譜)’가 처음으로 작성됐다. 그 결과 형제자매끼리의 근친교배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각종 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 종(種)보전팀은 지난해 4월부터 1년 동안 동물원 호랑이 38마리와 1983년 이후 폐사한 호랑이 21마리 등 모두 59마리의 혈액과 모근(毛根)을 채취, 유전자를 분석해 가계도를 완성했다고 16일 밝혔다.

국내에서 야생동물의 가계도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다른 야생동물의 종 보전을 위한 가계도 조사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 대상 호랑이를 동물원별로 보면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28마리(폐사 14마리 포함), 용인시 에버랜드 13마리(폐사 5마리 포함), 충북 청주시 청주동물원 6마리, 대전 대전동물원 4마리,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 2마리, 광주 우치동물원 3마리(폐사 1마리 포함), 강원 원주시 치악산 드림랜드 3마리(폐사 1마리 포함) 등이다.

분석 결과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근친교배의 비율이 높다는 점. 살아있는 호랑이 38마리 중 19마리(50%)가 근친교배로 태어났다.

국내 호랑이의 근친계수는 평균 0.104로 조사됐다. 근친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근친 정도가 낮고 1에 가까울수록 높다.

미국 동물원 호랑이의 근친계수 0.008의 13배 수준.

근친계수가 가장 높은 곳은 에버랜드와 대전동물원으로 0.188이었다. 에버랜드의 암컷 호랑이 ‘하니’는 1996∼2003년에, 서울대공원의 암컷 호랑이 ‘홍아’는 1999∼2004년에 ‘오빠’ 및 ‘남동생’과의 근친교배를 통해 각각 9마리씩의 새끼를 낳았다.

종보전팀 분석 결과 서울대공원의 경우 근친교배로 태어난 호랑이 4마리 중 1마리꼴로 사시(斜視) 백내장 시력저하 신경이상 등의 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비정상적인 하얀 호랑이가 태어난 경우도 있었다.

서울대공원 김보숙(金寶淑) 종보전팀장은 “미 미네소타 동물원의 경우 20년 전부터 미국 내 150여 마리 호랑이의 혈통을 조사 관리해 근친교배를 막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근친교배를 막기 위한 유전자 분석이 겨우 시작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수의과대 야생동물학 신남식(申南植) 교수는 “우선 야생동물의 유전자 분석과 가계도를 바탕으로 국내 동물원끼리 암수 야생동물을 교환해 근친교배를 막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혈통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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