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하루 한두잔 쯤이야…뇌세포 죽는건 마찬가지

  • 입력 2003년 12월 9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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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술은 건강에 좋다.’ 애주가 남편이 부인에게 자주 하는 당당한 주장이다. 외국의 유명 의학지에서 그 증거가 버젓이 제시되곤 하니 적지 않은 힘을 얻는다. 한 예로 올해 초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이 “술 종류에 상관없이 이틀에 한번 마시면 심장마비와 치매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어도 뇌의 경우 가벼운 음주도 안심할 수 없다. 또 같은 술을 마셔도 여성의 뇌가 남성보다 더 손상된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 뇌는 어떻게 취해갈까.》

●50대 하루 한두 잔도 안심 못해

5일 미국 심장학회가 발행하는 ‘뇌중풍’에는 50대 중반의 경우 가벼운 음주조차도 뇌세포를 죽여 뇌중풍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연구진은 중장년층 주민 1909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치로 찍었다. 그 결과 며칠에 한번씩 가볍게 마실 경우에도 뇌가 약간 위축된다는 점이 드러났다.


여성의 뇌가 남성에 비해 알코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같은 술을 마시더라도 치매에 더 잘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렇다면 술이 심장마비와 치매를 줄인다는 연구는 어떤 의미일까. 연세대 의대 정신과 남궁기 교수(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장)는 “하버드대의 연구는 하버드대 졸업생을 상대로 이뤄진다”며 “최고 상류층인 만큼 평소 몸 관리를 잘 하면서 가끔 술을 마시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평소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하루 한두 잔 먹는 것이 ‘약주’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뇌도 취하는 순서 있다

인간의 뇌는 크게 대뇌, 소뇌, 뇌간으로 구성된다. 뇌간은 호흡과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생명의 중추’다. 소뇌는 몸의 평형을 유지시키며, 대뇌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되게 만드는 고등 정신 영역이다. 진화학적으로 볼 때 안(뇌간)에서 바깥(대뇌피질)으로 구성물이 하나씩 추가되는 순서로 인간의 뇌가 형성돼 왔다.

흥미롭게도 술에 취하는 순서는 그 반대다. 예를 들어 소주 한 병을 마시면 사고와 판단이 느슨해진다. 바로 대뇌피질 전두엽의 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두 병을 마시면 소뇌에 영향을 미쳐 몸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네 병 이상을 마시면 뇌간이 마비돼 호흡과 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긴다. 인간의 뇌는 알코올의 공격에 대해 생명을 최대한 보호하도록 진화해온 셈이다.

●사람마다 술버릇이 다른 이유

알코올은 신경의 기능을 억제하는 물질이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우리는 흥분한다. 성욕, 공격성 등 원시적인 동물본능을 일으키는 부위가 대뇌 속 곳곳에 숨어있는데, 평소에는 대뇌피질이 그 기능을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대뇌피질의 기능이 억제된다. 전남대 심리학과 김문수 교수는 “자동차에 비유하면 브레이크가 파열된 셈”이라며 “그 결과 평소 억제된 감정이 풀어져 흥분한다”고 말했다. 술버릇을 알면 평소 그 사람이 무엇에 압박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셈.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의 술버릇을 주요 검토항목으로 꼽는 이유다.

그런데 사람마다 뇌의 민감 부위가 다르다. 남궁 교수는 “술에 취했을 때 어떤 사람은 울거나 난폭해지는 반면 조용히 잠드는 경우도 있는 이유는 알코올에 대해 가장 예민한 뇌 부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감정조절중추가 민감한 경우 실언을 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하는 반면 각성중추가 민감하면 마취된 사람처럼 쉽게 잠에 빠지게 된다.

●여성의 뇌가 더 예민하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알코올 분해효소가 남성보다 적어 간이나 심장 손상이 더 크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뇌에도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여성의 고유한 생물학적 특성이 뇌의 손상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MRI 촬영장치로 알코올중독인 여성과 남성을 각각 촬영하면 건강한 사람에 비해 위축된 정도가 여성이 남성의 두 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알코올 분해효소의 부족분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차이다.

남궁 교수는 “여성에게는 알코올이 독성물질을 남성보다 더 많이 만들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여성의 뇌가 남성보다 술에 약한 것은 임상적으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장술은 없다

술 먹은 다음날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메슥거리는 숙취를 이기기 위해 해장술을 먹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해장술을 먹고 씻은 듯이 숙취가 사라지는 것은 사실. 다만 알코올중독자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알코올중독자는 술을 먹지 않으면 금단현상으로 뇌에서 신경을 흥분시키는 물질이 급격히 증가한다. 따라서 알코올을 계속 섭취해야 괴로움이 억제된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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