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위용/‘기자 通話조회’ 시대착오적 검찰

  • 입력 2003년 10월 8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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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비자금 사건 등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최근 수사 보안을 이유로 출입기자들의 통화 기록을 조회한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적지 않다.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이 뒤늦게 사과했지만, 이 사안은 검찰권 남용에 의한 사생활 및 언론자유 침해라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은 7월 이후 대검 중수부가 현대, SK 비자금 사건 수사 정보가 수시로 언론에 보도되자 정보 유출자 색출 차원에서 기자와 검찰 직원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착·발신 기록을 뒤졌다는 것.

중수부는 당초 “소속 검사와 검찰 직원들의 휴대전화 착·발신 번호 등 통화 자료를 자진 제출토록 한 뒤 출입기자들의 전화번호와 대조했으나 출입기자들의 통화 기록은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강변했다.

그러나 얼마후 중수부가 서울지검장의 허가를 받은 뒤 정보를 제공받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기자들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도 확인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이 직원들을 상대로 ‘정보를 유출시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감시한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피의사실 공표를 막기 위한 내부의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원들의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 범죄와 관련 없는 출입기자들의 통화 기록을 뒤진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 기관의 무차별 통화 기록 조회 등 남용을 막기 위해 개인 통화 기록 조회 목적을 ‘범죄 수사상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검찰은 통화 기록을 조회하면서 기자들이 주요 취재원 외에 가족, 친구 등 수사정보 유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과 통화한 사실까지 들춰 본 것이다.

이런 식의 검찰 조사가 취재원에게 알려지면 취재원의 제보가 위축될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취재 활동도 제한되는 등 언론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될 수밖에 없다.

검찰 직원들도 통화 기록을 자진 제출했다고 하지만 상사에 의해 사생활의 일부분을 노출시키도록 강요당한 셈이다.

검찰은 출입기자들의 통화 기록을 무차별적으로 뒤졌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조회 절차가 떳떳하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검찰이 뚜렷한 재발방지 대책 없이 변명으로 일관하는 자세는 참고인으로든 피의자로든 이런저런 이유로 불려온 일반 시민들이 검찰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정위용 사회1부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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