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가 부른 변덕쟁이 「게릴라 장마」

  • 입력 1998년 7월 7일 20시 13분


올해 장마는 유난히도 변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지역에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다가 이내 그치고 때아닌 열대야가 찾아온다. 마치 게릴라처럼 불쑥 나타났다가 치고 빠지는 특성 때문에 ‘게릴라 장마’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장마는 원래 북쪽의 대륙성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팽팽한 전선을 이루며 한달 정도 지속되지만 전선은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장마전선은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으로 점프를 하듯이 움직여 나간다. 이것을 남북진동이라고 부른다.

장마전선은 남북진동을 하면서 중간중간 비가 그치는 소강상태를 보인다. 하지만 올해처럼 소강상태가 뚜렷하고 장마중 열대야가 나타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올해 장마의 남북진동이 어느해 보다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상전문가들은 이 원인을 엘니뇨의 급격한 소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엘니뇨가 6월중 급격히 쇠퇴했기 때문에 북태평양고기압이 보통 때와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것.

현재 동아시아지역에 뻗어 있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보이고 고기압의 중심도 예년보다 미대륙쪽에 치우쳐 있다. 때문에 같은 북태평양고기압이면서도 북쪽에서는 한대성고기압의 영향이 크고 남쪽에서는 해양성열대기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리나라 주변에는 기단(공기덩어리)의 스케일이 작게 쪼개져 있어 기압의 변동성이 매우 심해 장마의 남북진동도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조짐은 올해 4,5월에 예년의 6월달 북태평양고기압 형태가 나타나면서 여름처럼 더웠던데서 이미 시작됐다. 엘니뇨의 에너지가 막대하게 방출돼 기압 시스템이 이때부터 무질서해졌다.

장마는 몬순(계절풍) 기후 지역에서 여름 해풍이 불 때 큰 바다의 수증기가 대륙으로 몰리면서 나타나는 기상현상이지만 올 장마는 특히 해양과 대륙 사이의 큰 기단 충돌로만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엘니뇨가 시작된 지난해의 경우 장마때 무더웠고 소강상태가 길었다. 올해는 기압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96년처럼 일부 지역에 비를 퍼붓는 국지성 호우의 위험이 높다. 더구나 올해 장마 강수량은 평균적으로 많은 편이라 땅에 수분이 포화 상태라 앞으로는 수해를 입기 쉽다.

또 국내 기상은 티벳고원의 고기압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올해는 티벳고기압이 발달, 지상16㎞ 상층부에서는 한반도 상공에까지 뻗어 있어 변칙장마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여름철 심한 더위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도움말:강인식 서울대 대기과학과 교수, 박정규 기상청 장기예보담당관, 오재호 기상청 기상연구소 예보연구실장)

〈성하운기자〉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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