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톡톡]내밀한 사생활도 공유하길 바라는 세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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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연말이 되면 내년 다이어리가 나옵니다. 서울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따르면 2015년 연간 다이어리의 48%가 10∼12월에 팔렸다고 합니다. 연말 필수품,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 봤습니다.》
 
스스로의 약속과 일정

 “2년 전에 고시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매일 어떤 공부를 몇 시간 했는지, 또 그날 기분은 어땠는지 자세하게 적혀 있죠. 지난번 시험에 떨어졌을 때도 이 다이어리를 보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는데 다시 해 보면 붙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죠.” ―하채선 씨(28·CPA 준비생)

 “누구나 소장하고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저한테는 다이어리가 그런 존재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부터 연말마다 커피 전문점에서 구해 벌써 5개나 갖고 있어요.” ―한희원 씨(23·대학생)

 “당뇨약 먹는 날짜를 다이어리에 빼곡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약 먹을 때마다 다이어리를 보죠. 일부러 다이어리를 밝게 꾸며 놨어요. 손자들한테 부탁해서 귀여운 스티커도 많이 붙여 놓았고요. 가뜩이나 약 먹기 싫은데 약 먹을 날짜를 기록해 놓는 다이어리마저 어두컴컴하면 더 우울하잖아요.” ―나순달 씨(68·영천시장 상인)

 “원래 연말쯤 되면 은행에서 다이어리를 선물로 꼬박꼬박 받아서 썼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김영란법 때문에 그것 하나도 고객들에게 공짜로 제공하기 힘들어 제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서 쓰기는 아까운데 말이에요.” ―박선옥 씨(44·주부)

 “올해 10월, 11월 다이어리 매출 수량은 3만3051개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7%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구매하는 시기도 점점 더 빨라지는 편입니다. 10월에 내년 다이어리를 미리 구입하는 고객들의 비율은 작년 8%에서 올해 12%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카카오 캐릭터가 들어간 제품이 크게 유행하면서 양지다이어리와 함께 베스트 상품으로 사랑을 받고 있죠.” ―김민지 씨(30·교보 핫트랙스 영업기획팀)
 
숨기고 싶은 이야기

 “SNS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이라면 다이어리는 나만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루는 거잖아요. 나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형식의 소통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좋아요. SNS에서 만날 태그하고 공감 받고 하는 소통이 지겨워 다이어리 속으로 숨어드는 것 같아요.” ―문지영 씨(26·대학생)

 “요즘 스마트 기기에도 다이어리 기능이 다 있어요. 하지만 다이어리의 형식이 다 똑같아서 각자 취향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죠. 취향에 맞는 맞춤형 다이어리를 만들기에는 아날로그 다이어리가 딱 좋습니다. 종이 위에 서걱서걱 써 내려가는 것 자체가 주는 행복감, 인간적인 면도 있고요.” ―송혜진 씨(31·다이어리 전문업체 양지사 홍보팀)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용도가 예전처럼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나홀로족,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홀로 자신의 빽빽한 스케줄을 책임지고 기록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옆에 끼고 살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꼭 달성해야 할 일, 잊지 말아야 할 스케줄을 적어 놓고 스스로를 계속 압박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태연 씨(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공감 받고 싶은 욕망

 “한창 취업 때문에 힘들 때 ‘어라운드’라는 소셜 다이어리 애플리케이션을 알았어요. 다이어리 앱 화면에 이야기를 쓰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 이 앱을 사용하는 다른 사용자들이 제 다이어리에 댓글을 남겨 주죠. 누군지 모르는 사람과 다이어리를 은밀히 공유하는 게 좋더라고요.” ―한지완 씨(27·취업준비생)

 “사람들은 누구나 감성적일 때가 있지만 SNS에 그런 글을 올리면 오글거린다는 비판을 받죠. 그래서 익명으로 다이어리를 쓰고 오직 한 명에게만 그 글을 보내 답장을 받는 형식으로 앱을 기획했습니다.” ―안성호 씨(26·소셜다이어리 E-ting 기획자)

 “익명으로 서로의 일상을 다이어리에 적어 공유하는 소셜 다이어리 시스템은 나를 완전히 드러내고 싶은 SNS와 나를 완전히 숨기고 싶은 익명성 사이의 절충안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내 일상을 타인에게 완전히 공개하기는 싫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내밀한 고민이나 생각에 누군가 공감해 주길 바라죠.” ―구정우 씨(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직접 디자인하는 이유

 “불필요한 내지를 없애고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메모 공간 등을 충분히 늘릴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주로 학생들이 많이 찾는 브랜드인 만큼 ‘다 잘될 거야’, ‘너의 인생을 반짝이게!’같이 밝은 느낌의 문구가 들어간 것을 많이 제작하고 있고요.” ―남동완 씨(37·모닝글로리 디자인연구소)

 “다이어리는 연말에 크게 주목을 받지만 그것을 직접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획, 제작, 판매까지 꼬박 1년이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예요. 외피와 속지의 원재료를 직접 만져 보고 눈으로 확인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고르는 과정도 거쳐야 하고요.” ―임종욱 씨(31·CJ푸드빌 홍보팀)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다이어리에 대한 수요는 끊이지 않습니다.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손맛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다이어리를 디자인했습니다. 태블릿 PC에 전용 스마트펜을 이용해 일반 다이어리처럼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어요. 음성파일로 변환할 수 있어 새롭습니다.” ―임소영 씨(37·다이어리 전문기업 몰스킨 한국마케팅 담당자)
 
연말의 상술

 “스타벅스 다이어리 이벤트는 2004년 업계 최초로 시작해 현재까지 대표적인 연말 고객 사은품 행사로 이어져 오고 있어요. 연말에 다이어리를 증정해 고객이 스타벅스 브랜드에 친밀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죠. 올해에도 소비자들이 최대한 취향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이어리를 레드, 블랙, 핑크, 민트 4가지 색으로 제작했습니다. 내지 구성도 주(週)와 일(日) 단위로 세분하는 등 다양하게 구성했습니다.” ―임이슬 씨(33·스타벅스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연말에 치킨이나 피자집에서 사은품으로 다이어리를 주는 건 좋은데 실제 쓸 수 있는 것으로 줬으면 좋겠어요. 속지나 표지 디자인의 질이 너무 떨어져요. 차라리 사은품 줄 돈으로 피자나 치킨 값을 할인해주면 되지 굳이 그런 걸 만들어 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죠.” ―박영실 씨(48·청과점 운영)

 “카페에서 쿠폰을 모으면 주는 다이어리 사은품이 경매 사이트에서 개당 7만, 8만 원대에 팔리더라고요. 다이어리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그걸 얻기 위해 커피를 더 마시게 되는 거죠. 이게 다 상술인 것 같은데 몇 잔만 더 마시면 다이어리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 먹게 되더라고요. 사은품이라면 고객들이 커피를 많이 사먹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얻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경민 씨(26·대학생)
  
오피니언팀 종합
#다이어리#공감#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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