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주류가 바뀐다]영화, 이젠 문화가 아닌 레저다

  • 입력 2003년 3월 1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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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 세대교체는 현재진행형이다. 80년대 이후 영화계에 진입한 소장파 제작자들이 한국 영화에 ‘기획’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중흥의 씨앗을 뿌린 뒤, 2000년대 초반에는 급격한 한국 영화의 지형도를 바꿔 놓고 있는 중이다. 투자 배급 유통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가고, 멀티플렉스의 확산은 영화가 ‘문화’가 아니라 ‘레저’로 간주되는 변화를 몰고 왔다. 이에 따라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 장르와 배우층도 바뀌어 가고 있다.》

▼스타 세대교체…전지현 김정은 정준호 등 새별 부상 ▼

요즘 영화 투자, 제작자들 사이에서 캐스팅 1순위에 오르는 ‘스타’급 배우들은 더 이상 한석규 박중훈 전도연 이영애가 아니라 전지현 김정은 차태현 정준호 등이다. ‘흥행력’이 있다고 간주되는 스타들의 면면이 바뀐 것. 권상우 임창정 김하늘 손예진도 떠오르는 기대주들이다. 이전 세대의 배우들이 영화에 ‘입문’한 뒤 영화만을 전업으로 하거나 연극 쪽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력 탄탄한 배우들인 반면, 새로운 스타들은 영화 방송 가요 CF를 전방위로 넘나든다. 또 모두 ‘엽기녀’이거나 ‘망가지는 남자’ 역할 등 코미디 연기를 통해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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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의 세대교체를 몰고 온 주 요인은 관객층의 변화. 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의 주 관객은 20대 중후반이었지만 요즘은 이전에 한국 영화를 보지 않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이 주 관객을 형성하고 있다. 새로운 관객들이 컨셉트와 감성이 단순하고 뚜렷한 영화들을 선호하다보니 코미디 영화가 대세를 이루게 됐고 스타의 세대교체도 뒤따랐다.

▼날로 커가는 유통-배급망…문화의 자본화 가속 ▼

90년대 중후반에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획 영화’들을 만들어낸 영화 프로듀서들이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투자 배급 유통 등 산업적 측면의 영향력이 더 커져가고 있다.

한국 영화의 산업화, 영화사의 대형화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제작, 멀티플렉스를 통한 영화의 와이드 릴리즈(대량 배급), 한국 영화의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했다. 현재 투자 배급 유통망의 대형화를 통해 한국 영화 산업화를 이끄는 견인차는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 그리고 CJ엔터테인먼트(대표 이강복)다.

수년간 국내 영화시장에서 1, 2위를 다투어 온 두 회사의 합병이 최근 기정사실화하면서 조만간 초대형 공룡기업이 탄생하게 될 전망이다.

이 합병으로 한국영화 산업화가 가속화 될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영화계에서는 독과점 현상도 우려하고 있다. 메가박스 극장 라인을 갖고 있는 쇼박스, 전국에 멀티플렉스 체인을 짓고 한국 영화 제작도 준비 중인 롯데 시네마 등이 그 뒤를 쫓고 있다.

▼촬영현장 김형구 홍경표 등 美유학파 대거 진출 ▼

요즘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중견’ 스태프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문 교육 대신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는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촬영 현장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진 대표적인 직군은 촬영감독이다. 정일성 정광석 등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파 촬영감독들을 제치고 외국에서 촬영을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촬영기사들이 카메라를 멘다.

동아일보가 실시한 ‘프로들이 뽑은 우리 분야 최고’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꼽힌 김형구 촬영기사는 미국 영화학교 AFI를 졸업한 뒤 ‘비트’ ‘아름다운 시절’ ‘박하사탕’ ‘봄날은 간다’ 등을 촬영했고 현재 ‘살인의 추억’을 찍고 있다. 또 미국에서 현장 경험을 쌓은 홍경표(‘유령’ ‘챔피언’), AFI를 졸업한 박현철(‘2009 로스트 메모리즈’ ‘YMCA 야구단’) 등도 새롭게 주류가 된 촬영감독들이다.

▼김지운 박찬욱 등 작품-대중성 동시추구 감독 재등장 ▼

최근 코미디 영화들이 대세를 이루고 영화가 가벼워지면서 영화의 상업적 흥행에만 포인트가 맞춰지고 있지만 한국 영화사에서 30여년 만에 작가 영화와 대중 영화의 경계를 오가는 감독들이 등장했다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변화다. 현재 ‘장화, 홍련’을 촬영 중인 김지운, ‘살인의 추억’을 촬영 중인 봉준호, ‘올드 보이’를 준비 중인 박찬욱, ‘두 사람이다’를 준비 중인 정지우, ‘봄날은 간다’(2001년)의 허진호 감독 등이 그들.

김기영 이만희 신상옥 감독 등이 대중성과 작품성이 만나는 경계 위에서 한국 영화 발전에 공헌했던 60년대 이후 검열과 영화 제작의 위축으로 그 같은 명맥이 끊겼지만 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등장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경계에 선 감독들이 부활했다.

반면 김상진(‘광복절특사’), 윤제균(‘색즉시공’)처럼 작품성에 가위눌리지 않고 ‘재미’를 최고의 지상 가치로 내세워 성공한 감독들도 주류로 등장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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