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주류가 바뀐다]<8>출판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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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가벼워졌다’는 기성세대의 곱지 않은 눈길 속에서도 책을 대하는 전문인의 비중은 한층 무거워졌다. 투철한 장인의식으로 무장한 새 세대의 출판기획자와 편집자들은 인문-논픽션, 교양-실용 등의 장르를 허물며 독자에게 한층 다가서는 실험을 성공시키고 있다. 또 이들 중 여성 출판인들의 약진도 두드러지고 있다. 새 세대의 주류는 90년대 초반 사회에 나온 ‘80년대 학번’. 글이 가진 ‘변화의 힘’을 굳게 믿고 출판에 뛰어든 이들은 90년대에 출판 현장에서 탄탄한 기본기와 실전을 익힌 뒤 오늘날 출판계의 핵심으로서 의미있는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30, 40대 여성 출판인 경영능력 앞세워 대약진 ▼

“10년 전만 해도 여성 출판경영인은 동류(同類)가 없는 외로운 존재였죠”.

김영사 박은주 대표의 회상. 오늘날엔 푸른숲 김혜경 대표, 사계절 강맑실 대표, 현암사 형난옥 대표 등 종합 출판기획을 이끌고 있는 여성 출판경영인들 외에 명상서와 문학의 절묘한 결합으로 인기를 끄는 이레 고석사장, ‘작가정신 소설향’으로 중장편 소설의 바람을 일으킨 작가정신 박진숙 사장 등 색깔 있는 책들을 내고 있는 여성 출판인들이 출판가의 새로운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전문 편집자’ 의 새 세대로는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와 ‘살바도르 달리’ ‘유혹의 기술’ 등 대중적 인문 교양서를 성공시킨 이마고의 김미숙 대표 등이 여성 출판인계의 ‘젊은 목소리’로 제 색깔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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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편집자’에서 ‘전문 편집자’시대로 ▼

90년대까지를 시인, 소설가, 평론가의 직함을 지닌 ‘문인 편집자’의 시대였다고 한다면 최근 김광식 책세상 주간,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등 ‘비(非)문인’ 또는 ‘문인<출판인’ 으로서의 정체성을 표방하는 전문인들이 출판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한 문인출신 편집자는 “90년대만 해도 좋은 필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한데다 출판 현업 종사자들이 대개 문인이었으니 업무에도 문인 직함이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이런 겸업체제는 상대적으로 출판을 부업으로 여기거나 이직이 잦은 단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 기획 편집자들은 2000년대 이후 ‘자기만의 브랜드’로 독립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김학원 대표를 비롯해 과학 전문출판사인 궁리출판의 이갑수 대표,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등 인문과 문학을 접목시킨 컨셉트로 주목을 받고 있는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 등 70년대 후반의 ‘말참’ 학번에서 80년대 학번에 이르는 편집인들이 대표적 사례.

▼참신한 아이디어 무기 기획 중심의 책이 뜬다 ▼

90년대까지는 저자의 원고를 받아 정리 편집하는 형태의 단순출판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의 전문 기획자들은 단순한 원고 정리가 아니라 기획력과 아이디어로 필자를 관리 감독하는 문자 그대로의 ‘북 프로덕션(Book Production)’을 일반화시키고 있다.

기획자가 필자보다 우위에 서게 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의미깊은 변화는 ‘장르의 파괴 또는 통합’. 비소설-인문, 교양-실용 문학-시각예술 등 기존의 장르 구분으로 분류할 수 없는 ‘장르 퓨전’ 형태의 출판물이 주목을 받게 됐다. 이런 경향을 선도하는 편집자들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정옥자 지음)’를 낸 현암사의 김영화 편집1팀장, ‘윤광준의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낸 웅진닷컴 이수미 편집차장,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를 히트시킨 동아시아의 한성봉 대표 등 70년대 말∼80년대 학번들.

이런 장르통합에는 전문 출판기획자의 대두, 도서시장환경의 변화, 일간지 북섹션 등장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 이런 경향에 따라 해당 분야의 기초적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교양 인문서 및 예술도서 역시 예전보다 훨씬 넓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클림트 황금빛 유혹’을 내놓은 다빈치의 김장호 주간, ‘웬디수녀의 유럽미술 이야기’를 히트시킨 예담의 정차임 편집장, ‘풍경에 다가서기’를 내놓은 효형출판의 송승호 편집위원 등이 이런 경향을 주도해온 ‘386’ 대표주자에 속한다.

▼한 작가 작품 집중 소개 출판가 主트렌드로 ▼

90년대 후반 이후 외국문학물의 경우 해외의 화제작을 그때 그때 소개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소개하는 ‘전작주의(全作主義)’적 기획 출판도 중요한 경향으로 대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열린책들은 93년 ‘개미’를 필두로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본고장 프랑스를 능가하는 ‘베르베르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열린책들은 움베르토 에코, 폴 오스터 등의 작품도 집중 소개하며 전작을 통한 바람의 ‘시너지 효과’를 늘려가고 있다. 열린책들의 김영준 편집장은 “문화권이 다른 해외 작가의 경우 잘 팔리는 한두 작품만을 소개하는 것보다 그의 전모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할 때 독자가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고 장기적인 ‘바람’을 일으키기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황금가지(편집장 장은수)도 ‘셜록홈스 전집’ 등을 통해 ‘작가 전모 소개’ 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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