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 출생과 성장(2)] 야후

  • 입력 1999년 7월 1일 18시 33분


93년말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한 연구실.

전기공학을 전공하는 당시 24세의 젊은 공학도 제리 양은 단짝 친구 데이비드 파일로와 함께 고민에 빠졌다. 박사학위 논문을 빨리 끝내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

때마침 지도교수가 안식년을 맞아 1년간 쉬게 되자 이들은 ‘재미없는’ 논문 작성을 뒤로 미루고 사업구상에 빠져들었다.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끌어모은 자료들이 동료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점에 착안해 인터넷 자료를 효과적으로 찾아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4평 남짓한 낡은 트레일러를 빌려 작업하기를 3개월여. 축적해온 노하우와 자료 덕분에 손쉽게 인터넷 검색엔진을 개발할 수 있었다.

제리 양은 어릴때 읽었던 ‘걸리버여행기’에 등장하는 거칠고 미개한 종족이 문득 생각나 이름을 ‘야후(Yahoo)’라고 정했다. 박사논문을 내버려둔 채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를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야후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

야후는 94년4월 세계 최초의 인터넷 기업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경영이 문제. 기술에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회사를 키워줄 인재가 필요했다. 제리 양은 전문경영인으로 명성을 날리던 팀 쿠글에게 접근해 사장으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야후를 성장시켜 과실을 함께 나누자는 제리 양의 제의를 쿠글이 받아들인 것.

야후는 이후 한국계 일본인 기업가 손정의 회장을 만나면서 급성장을 시작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패기와 아이디어뿐인 20대 후반의 제리 양과 짧은 면담을 나눈 손회장은 1억달러라는 거금을 선뜻 야후에 투자했다.

96년 4월 나스닥에 등록함으로써 야후는 또 하나의 세계최초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세계최초로 상장한 인터넷 기업. 14달러로 시작한 야후의 주가는 인터넷의 미래를 낙관하는 투자자들의 믿음으로 연일 치솟았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더욱 뛰어올랐다.

낡은 트레일러에서 탄생한 ‘야후(www.yahoo.com)’는 현재 하루평균 6000만명의 네티즌들이 찾아와 2억3500만 페이지를 보고 나가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성장했다. 자산가치만도 400억 달러. 96년 나스닥 등록 때에 비하면 기업 가치가 1만배 이상 증가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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