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출구 못찾는 트럼프]
전쟁 33일 “군사능력 무력화” 자찬… 합의 불발땐 공격 전방위 확대 시사
핵 제거 말했지만 근거 제시 못해… 지휘부 사망에도 혁명수비대 건재
“美 원유 사든지, 스스로 보호 하든지”… 호르무즈 안전 책임도 타국 떠넘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이란 전쟁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이란과의 종전 협상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도 “앞으로 2, 3주 동안 이란에 극도로 강력한 공격을 가해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당초 기대됐던 종전 시기나 방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워싱턴=AP 뉴시스
“핵심 전략 목표가 거의 완료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하게 돼 기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가진 대(對)국민 연설에서 이란 전쟁의 군사적 성과를 자찬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미국을 위협하거나 국경 밖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란 정권의 능력을 체계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우린 이 모든 것을 해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사실상 ‘종전’이 가까워졌음을 시사했다. 또 제1,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미국이 경험한 ‘장기전’을 언급하며 이번 전쟁에선 신속하게 목표가 달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쟁 33일째인 이날까지 △핵·미사일 능력 제거 △정권교체 △호르무즈 해협 안정같이 미국이 승리 또는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는 근거로 여겨지는 목표들이 제대로 달성됐다는 평가는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연설에서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평한 전쟁 성과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 트럼프 “핵 제거” 자평했지만… 고농축 우라늄 여전히 이란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은 긴 사거리의 무기를 갖고 있었고, 아무도 그들이 갖고 있을 거라 믿지 않던 무기들도 보유하고 있었다”며 이번 전쟁을 통해 이 무기들을 모두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그동안 군사적 측면에선 이란의 주요 표적을 1만 개 이상 타격하는 등 상당한 전술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위협 제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전쟁 전 이란의 미사일 재고 규모에 대한 추정치를 공개하지 않았고, 현재도 미사일 능력이 얼마나 파괴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또 로이터는 이스라엘 당국을 인용해 이번 전쟁으로 이란 미사일 발사 능력의 70%는 무력화됐지만, 남은 30%의 전력을 제거하는 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다.
이란 핵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특히 큰 사안으로 꼽힌다. 그는 그동안 이란의 ‘핵 개발 저지’를 전쟁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450kg(핵무기 10기 분량)에 해당하는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이 제거 또는 통제되고 있다는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CBS방송 인터뷰에선 “그건(고농축 우라늄) 너무 깊숙이 묻혀 있어 누구도 반출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 대상을 군사시설에서 전방위로 확대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주요 목표물을 주시하고 있다”며 2, 3주 내 이란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발전소까지 타격하겠다고 예고했다. 또 “가장 쉬운 목표물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원유(시설)는 때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향후 원유 등 에너지 인프라까지 폭격해 이란 경제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위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전쟁 장기화로 조급해져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비군사 시설에 대한 공습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분석한다.
● “정권 교체” 주장에도, 혁명수비대 건재… 호르무즈 위기도 발목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그들(이란)의 기존 지도자들이 모두 사망하면서 사실상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기존 지도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해 다른 사람들로 바뀐 만큼, 이 역시 승전 선언을 위한 명분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의 이란 혁명수비대가 여전히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는 사망했지만 그 자리를 강경파인 아들이 승계했다. 또 알리 라리자니 전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등 상대적으로 협상이 가능한 실용적 성향의 인사들이 대거 사망한 뒤 더 강경한 성향의 인사들이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은 정권 교체가 아닌 ‘인물 교체’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미국이 제대로 매듭짓지 않고 서둘러 종전을 선언할 경우 국내외 논란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연설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중동산 원유 등을 수입하는 국가들에 “미국에서 원유를 사거나, 이제라도 용기를 내 스스로 원유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라”고 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해 통행료 규정까지 만들며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해협의 안전 확보 책임을 다른 나라들에 떠넘긴 것. 이는 이란에 호르무즈 통제력을 지렛대 삼아 향후 협상과 군사적 대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NYT는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를 유지한다면 전 세계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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