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학계 블랙리스트’ 논란 확산…시민단체들, 총리 관저앞 규탄 집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6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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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소위 ‘학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지난달 취임 후 첫 시련을 맞았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학술단체 ‘일본학술회의’의 회원으로 임명하는 것을 스가 총리가 거부한 것인데,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여론조사에서도 이번 결정이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이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서도 일본학술회의 인사에 사전 관여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민영방송 뉴스네트워크 JNN이 3, 4일 전국 18세 이상 12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일본학술회의가 새 회원으로 추천한 후보 105명 중 6명을 스가 총리가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 51%가 ‘타당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타당하다’는 응답은 24%에 그쳤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스가 내각 지지율은 70.7%로 지난달 조사 때보다 8.3%포인트 높아졌지만, 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에 대해선 국민적 반감이 거센 것이다. 전국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들도 6일 오후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1949년 발족한 일본학술회의는 일본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학술기관으로 정부에 정책 제언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약 10억 엔(약 110억 원)의 운영비 전액을 국고에서 지원받지만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210명의 회원 중 절반이 3년마다 바뀌는데, 일본학술회의가 추천하고 총리가 임명하게 돼 있다.

스가 총리가 이번에 임명을 거부해 논란이 된 6명은 안보관련법, 특정비밀보호법 등 아베 전 총리 집권기에 추진하던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밝혔던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과 야당은 “정치권력으로 학문을 길들이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1983년 “정부는 형식적으로 임명하고, 각 학회·학술단체가 실질적인 추천권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어 스가 정권이 정부 견해를 바꿨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권 때인 2017년 총리관저가 일본학술회의 회원 인사에 사전 관여했다”고 6일 보도했다. 당시 총리관저는 학술회의가 추천할 후보 105명을 결정하기 전에 그보다 많은 후보 명단을 제시하도록 요구했고, 학술회의는 결국 110명 이상의 명단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학술회의 측이 희망하는 105명이 추천돼 모두 임명됐지만, 사전 협의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스가 총리는 이번 임명 거부에 “문제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6일 자민당 간부회의에서 “일본학술회의는 연간 약 10억 엔 예산을 쓰면서 활동하고, 임명된 회원은 공무원”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총리관저 출입기자단과의 공동인터뷰에선 “추천된 사람을 임명하는 책임은 총리에게 있다. (학술회의가) 추천한 사람을 그대로 임명해온 전례를 답습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했다”고 밝혀 앞으로도 학술단체 임명에 관여할 뜻을 내비쳤다. 이번에 6명을 임명 거부한 이유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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