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해 국제공인’ 日주장 근거 깨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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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일본해’ 안쓰고 숫자표기 유력
국제수로기구, 한일 분쟁 의식
바다이름 대신 식별번호 도입, 표준 해도집 개정판에 적용 제안
‘동해 병기’ 23년 외교전 힘받을듯

국제 해양 명칭의 표준을 결정하는 국제수로기구(IHO)가 공식 책자에 그동안 동해 명칭으로 표기해오던 일본해 대신 고유의 ‘식별 번호’를 부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일본의 논리가 정당성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IHO 책자에 ‘일본해’뿐 아니라 ‘동해’를 함께 병기해야 한다며 외교전을 펼쳐 왔다. ‘동해와 일본해의 공동 병기’라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IHO 책자를 근거로 해도 등 각종 지도에서 ‘일본해’를 단독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일본의 논리를 반박할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IHO는 각종 해도 제작의 지침이 되는 국제 표준 해도집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개정판에 동해를 ‘식별 번호(universal numerical identifier)’로 표기하는 방안을 최근 한일 양국에 제안했다. IHO 사무총장은 11월 화상으로 개최될 제2차 총회에서 이 내용이 담긴 협의 결과를 브리핑할 예정이다. 정부는 IHO 회원국들이 높은 지지를 보여 해당 안건이 채택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HO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해’가 단독으로 병기된 S-23을 발간했다. 이런 병기 방식은 2판(1937년)과 3판(1953년)에서 별도의 수정 없이 이어졌다. 뒤늦게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1997년부터 국제사회에서 S-23에 동해가 공동으로 병기돼야 한다는 외교전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동해 표기를 위한 IHO 회원국들 간 이견이 해결되지 않아 그해에 나온 4판에 동해 부분이 백지로 남았다. 한일 간 갈등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자 지난해 남북과 미국 일본 영국 등 5개국이 두 차례 비공식 협의를 가졌고 동해도 일본해도 아닌 식별 번호를 기재하는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IHO는 ‘디지털 해도 시대’의 시작을 식별 번호를 도입하는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동해 표기를 둘러싼 한일 간 오랜 분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 개정판에서 바다 이름을 모두 빼기로 한 것이다.

외교당국은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명칭’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가 S-23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식별 번호가 사용된 S-23 개정판의 발간이 일본의 주장을 뒤집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의 주장과 달리 ‘일본해 단독 병기’가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이라는 논리로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3년을 이어온 한국의 ‘동해 병기’ 외교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초 목표였던 ‘동해 병기’를 이루지 못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여전한 일본의 영향력을 넘어서지 못한 방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식별 번호를 도입한 새로운 해도집이 나온다고 해도 일본해가 표기된 기존 S-23이 바로 폐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일본의 입장도 반영됐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IHO 입장에서는 일본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한일 가운데 한쪽 편만 들어줄 수 없는 IHO가 고민 끝에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재 record@donga.com·최지선 기자
#동해 표기#한일 분쟁#iho#식별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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