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홍콩인권법 서명… 中 “중화민족 부흥 파괴 시도” 발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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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탄압한 당국자 제재 가능… 中외교부 “결연히 반격할 것”
과학기술-무역 등 패권다툼 이어… 中 애국주의와 美 자유주의 충돌
진전 보이던 무역합의도 불투명… 양국 관세보복 확전될 가능성

홍콩 시위대 “고마워요 트럼프” 28일 홍콩 반중 시위대원 1명이 도심 금융지구의 건물 기둥 벽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 게시물을 붙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하며 시위대를 지지할 뜻을 밝혔다. 홍콩=AP 뉴시스
홍콩 시위대 “고마워요 트럼프” 28일 홍콩 반중 시위대원 1명이 도심 금융지구의 건물 기둥 벽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 게시물을 붙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하며 시위대를 지지할 뜻을 밝혔다. 홍콩=AP 뉴시스
미국과 중국이 홍콩 사태를 둘러싸고 정면충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 홍콩 시위대를 탄압한 중국 및 홍콩 당국자들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안)에 서명했다. 중국 외교부는 28일 대변인 성명을 내고 “적나라한 패권행위”라고 거칠게 비난하면서 “결연히 반격할 것이다. 모든 후과(後果)는 미국이 져야 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특히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홍콩인권법 서명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21세기 중반까지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夢), 즉 중국식 사회주의 발전 구상을 미국 정부가 홍콩 문제를 이용해 파괴하려는 것으로 처음 규정한 것이다. 이는 홍콩 사태가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미국 등 서방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전선(戰線)으로 떠올랐음을 중국 스스로 밝힌 것이어서 주목된다. 무역,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이어 미중 간 충돌이 이데올로기 영역으로 확전됐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미중 무역 합의에 파장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안 및 ‘홍콩에 특정 경찰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홍콩인권법은 미 행정부가 홍콩의 인권 탄압에 연루된 중국 정부 인사 등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및 자산 동결 같은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미 국무부가 홍콩의 자치 수준을 매년 검토해 그 결과를 홍콩의 무역 특별지위 유지 여부 결정에 반영하는 내용도 담겼다. 시위 참가로 체포되거나 기소된 학생의 미국 비자 발급 허용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에서 “중국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홍콩 시민에 대한 존경심에서 이 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상·하원이 모두 초당적으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한 법안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서명하지 말라”고 경고해 왔다는 점에서 미중 간 1단계 무역 합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개적으로 발표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미중 협상을 비틀 수 있는 변수”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규모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밝힌 시한(다음 달 15일)까지 1단계 무역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양국 간 관세 전쟁 확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 3일 만에 주중 대사 다시 불러 항의


시 주석의 분노는 28일 중국 정부의 반응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관영 신화통신은 외교부 성명을 보도하면서 기사 위 붉은 바탕에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다. 중국은 미국에 엄정하게 통고한다”며 “패권행위/결연반대/실패운명”이라고 큼지막하게 썼다.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 홍콩 주재 중앙정부 연락판공실, 홍콩특구정부 등 관련 기관들도 미국 비난에 총동원됐다. 특히 외교부는 홍콩 시위대를 ‘폭력 범죄 분자’라고 부르며 미국에 “사실을 외면하고 흑백을 전도해 이를 부추기는 것은 극도로 악질적이고 속셈이 매우 사악하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에 이어 러위청(樂玉成) 부부장이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초치(항의하기 위해 불러들임)해 “미중 관계와 양국 간 중요한 분야의 협력이 중대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미국이 잘못을 바로잡아 법안을 실시하지 말기를 강하게 촉구한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인권법안 서명이 미중 무역협상에 영향이 있는가’ 등의 질문에 러 부부장과 같은 답변을 했다.

다만 무역협상 주무부처인 중국 상무부는 미국 비난을 자제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가오펑(高峰) 상무부 대변인은 27일 “홍콩인권법이 무역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더 공개할 만한 내용이 없다”고 답해 온도 차를 보였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홍콩 사태#홍콩인권법#도널드 트럼프#미중 무역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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