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업은 아기 살리고 엄마는 하늘로… 미국이 울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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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구 물살에 휩쓸린 모녀
아이 보호하려 엎드린채 버티다
의식 잃은채로 물에 떠다녀
WP “진정한 엄마의 의지 보여줘”

‘하비’ 사망자 최소 38명으로 늘어
인간띠 만들어 고립된 노인 구조도

허리케인 하비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미국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숨진 콜렛 설서 씨(오른쪽). 그는 자신이 익사 위험을 겪으면서도 세 살배기 딸을 필사적으로 살려냈다. 영국 일간 미러 홈페이지 캡처
허리케인 하비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미국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숨진 콜렛 설서 씨(오른쪽). 그는 자신이 익사 위험을 겪으면서도 세 살배기 딸을 필사적으로 살려냈다. 영국 일간 미러 홈페이지 캡처
허리케인 ‘하비’ 피해 닷새째인 지난달 29일. 텍사스주 보몬트 도로를 가득 채운 물 위로 보트를 타고 지나던 구조대원들이 핑크색 작은 배낭을 멘 세 살배기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아이가 지탱하고 있던 건 엄마 콜렛 설서 씨(41)의 등이었다. 발견 당시 의식을 잃은 상태였던 설서 씨는 얼굴을 물속에 묻고 엎드린 채 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아이는 무사히 구조됐지만 엄마는 결국 숨졌다. 헤일리 모로 보몬트 경찰 대변인은 이튿날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아이를 어떻게든 살려보려 한 진정한 엄마의 의지를 보여줬다”며 조의를 표했다.

WP에 따르면 설서 씨는 사고 당일 주차장에서 딸과 함께 차에 타고 있었다. 주차장에 물이 차올라 차량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아이를 등에 업고 차에서 빠져나왔다. 한 목격자는 아이를 업은 여성이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던 중 커다란 배수구에서 쏟아져 나온 물에 휩쓸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미국 국립기상청에 따르면 당시 보몬트 일대에는 시간당 50mm의 폭우가 쏟아지고 시속 60km가 넘는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급류에 휩싸인 휴스턴의 한 도로에선 주민들이 ‘인간 띠’를 이어 차량 안 노인을 구출하는 ‘작은 기적’이 벌어졌다. CNN에 따르면 한 노인이 차를 몰고 가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멈춰서 고립되자 주민 10여 명이 도로변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물속에 들어가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며 노인 쪽으로 다가갔다. 차량에 가까워질수록 수위가 점점 높아져 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랐지만 이들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당시 구출 활동에 동참한 마리자 카스티요 씨는 “사람이 차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며 “그때 누군가 ‘인간 띠를 만들자’고 제안해 모두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고 말했다. 이 구조 장면을 촬영해 온라인에 공개한 한 시민은 “텍사스 주민들이 어떻게 힘을 모으는지 보여주는 광경”이라며 “우리는 이렇게 하나가 돼 어려움을 이겨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출된 노인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검진을 받은 뒤 가족과 재회했다.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에게도 어김없이 구조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에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동물들이 인간의 품에 안겨 구출되고 있는 현장을 전하는 영상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CNN은 “평범한 시민들이 하비가 몰고 온 절망 속에서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허리케인 하비는 지난달 25일 텍사스에 상륙한 뒤 지금까지 최소 3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조은아 achim@donga.com·김수연 기자
#하비#허리케인#미국#모성#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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