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퍼나르는 SNS, 분노 부추기는 후보… 망가진 美대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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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최악 진흙탕싸움 왜?

 “민주주의가 투표에 부쳐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4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민주당 유세에서 “우리의 관용, 정직, 배려심이 (이번 대선) 투표에 올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70)가 대통령으로 뽑히면 관용, 정직 등의 소중한 가치는 물론이고 민주주의가 몰락할 것임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69)도 네거티브 공방에 가세해 이번 대선이 사상 최악의 진흙탕 싸움이 됐다는 비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투표일인 다음 달 8일까지 20여 일 남았지만 국내외 정책 현안들은 사라지고 두 대선 후보 간 서로의 약점을 파고드는 막말과 네거티브 캠페인만이 판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류 언론의 보도에서도 두 후보의 공약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2일 “우리가 거의 2년 동안 선거 오락과 한심함 속에 빠져 있기만 하면 국가는 몰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주의의 본산으로 꼽히는 미국의 대통령이 ‘민주주의 위기’를 거론하는 상황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그동안 ‘정치 선진국’인 미국 정치의 어젠다 세팅 전략 등을 벤치마킹해 왔고 지금 미국이 떠안고 있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세계 정치의 지평을 한 단계 격상시켰던 미 대선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전문가들은 스마트폰과 맞물린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각종 유언비어와 상호 비방이 아무런 제약 없이 확산되고 있는 점을 꼽는다. 여기에 트럼프라는 ‘전대미문’의 막말 후보가 등장해 기름을 끼얹었다. 대선 후보 자신이 직접 ‘폭풍 트윗’을 날리는 등 소셜미디어를 네거티브 캠페인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이번 대선이 처음이다.

 실제 두 후보의 유세장에 가보면 지지자들이 검증 불가능한 두 후보의 각종 주장을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한다. 그러면 CNN 폭스뉴스 등 24시간 대선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사들은 속보로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는 막말을 전하고 전문가를 동원해 이를 품평한다.

 일자리와 이민자 문제로 분노하는 유권자들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 기성 워싱턴 정치를 향한 불만도 막장 대선을 부채질한다. 트럼프는 유권자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 주듯 기성 정치권을 거세게 공격해 환호를 받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NYT, CNN 등 주류 언론이 양적 균형을 상실한 채 클린턴 대통령 만들기에 발 벗고 나선 것도 유권자들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트럼프는 유세 때마다 “주류 언론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낙선시키려 한다”고 주장하고 지지자들은 열광한다. 최근 트럼프 유세장에서 만난 한 40대 백인 남성은 기자에게 ‘진보 언론을 믿지 말라’며 CNN 중계 차량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세웠다.

 평소 미국이 자신들의 인권 문제 등 국내 정치 상황에 훈수를 둘 때마다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했던 중국은 미 대선을 조롱하고 있다. 중국의 장즈신 현대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미 대선은 민주주의의 역기능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고 미 CNBC방송이 전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분노, 비방의 정치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벌써 혐오 여론을 조장하는 정치인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견제할 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사회적 약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고 소셜미디어에서의 유언비어 견제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은아 achim@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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