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우리 군의 무인기가 북한 영공에 침투했다고 주장하며 공개한 무인기 잔해 사진. 노동신문 뉴스1
손효주 정치부 기자 “북한은 손해 본 게 없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10일)에 이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11일)를 내며 ‘한국발 무인기의 북한 영공 침범’ 주장을 내세운 강공을 퍼부은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이번 대남 강공 카드로 ‘저비용, 무위험, 고수익’이라는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북한은 이달 4일과 지난해 9월 27일 한국이 무인기를 날렸다고 주장했지만, 따져 보면 한국발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잔해만 봐선 우리 민간 단체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누구나 구할 수 있는 부품으로 제작된 것으로 주체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는 우리 측 민간 영역에서 날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북한 자작극이나 제3국 단체 소행 등 다른 가능성은 닫아두는 듯한 모습이었다.
인민군 총참모부 성명이 나온 지 4시간도 되지 않아 “우리 군은 당시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발표한 군은 당장 이번 사태로 인한 손해를 입고 있다. 민간 무인기가 북으로 넘어가는데도 포착하지 못했다며 군의 역량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 5대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상공까지 휘젓고 다녔고, 이후 무인기 탐지 자산을 대폭 증강했다던 군의 공언이 허언이었다는 비판이다. 12·3 비상계엄에 동원되며 지탄의 대상이 됐던 군은 또다시 수렁에 빠진 모양새다.
김 부부장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드론 탐지 시스템이요 뭐요 하면서 ‘물샐틈없는 방공망’을 떠들어대던 군부가 백주에 발진한 비행물체를 모른다고 잡아뗀다”며 우리 군을 조롱했다. 반면 인민군 총참모부는 “국경 대공 감시를 하던 구분대들은 공중 목표를 포착하고 추적해 특수한 전자전 자산들로 공격…” 등의 표현으로 북한군을 최정예 특수부대처럼 묘사하며 추켜세웠다.
또 다른 군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뛰어난 방공망을 가진 국가도 2m 미만 크기의 저공비행 초소형 무인기를 모두 잡아내는 데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북한군을 전지전능한 군으로 포장하는 선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전자전 장비에 기반한 정교한 안티 드론 체계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방공망이 비교 불가 수준이라는 것은 군사적 상식임에도 북한이 한국군에 대한 불신이 계속되도록 하려는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영공 8km 계선까지 전술적으로 침입시킨 다음 특수 전자전 자산들로 공격해 개성 개풍구역 묵산리 101.5고지에서 1200m 떨어진 지점에 추락시켰다”는 성명 내용은 서사 과잉이라는 선전문의 전형적인 특징을 띤다. 정상적인 군대는 대공작전 관련 절차를 이처럼 자세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북한은 이번 ‘무인기 선공’으로 2022년, 2017년, 2014년 등에 걸쳐 한국에 수차례 내려보내 긴장을 고조시킨 무인기 도발에 따른 ‘북한=가해자’ 구도를 지운 모습이다. 대신 계엄 전 우리 군의 북한 내 무인기 침투 사건과 이번 사태를 엮어 자신들은 무인기 위협의 피해자라는 ‘신분 세탁’에 일부 성공한 듯하다. 과거 무인기 사태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하지 않던 북한은 김 부부장을 앞세워 보복 위협을 하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더니, 군경 합동 조사를 통한 신속한 진상 규명이라는 우리 정부의 약속까지 받아냈다. 총참모부 성명이 나온 10일에만 4차례에 걸쳐 북한을 달래는 입장을 내놓은 정부 대응을 두고 여론은 분열됐다. 정부가 과도하게 저자세를 보인다거나, 정부 입장에선 남북 신뢰 구축을 위한 최선의 대응이라는 등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남남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이 역시 우리 손해다.
북한이 남한에 무인기를 침투시켰을 당시 우리 정부가 김 부부장처럼 북한을 ‘쓰레기 집단’으로 규정하고, 신속한 조사를 압박했다면 북한은 어땠을까. “들개무리들이 게거품을 물고 짖어대는 모습을 딱 한 번은 보고 싶다” 등 그간 북한이 내놓은 ‘전투 언어’의 수위를 크게 웃도는 새로운 욕설이 돌아왔을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지난 주말 보인 속도전식 대응을 두고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무인기가 남북 모두에 위협이라면, 문제 해결을 위한 군사 회담을 공식 제안하는 편이 저자세 논란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에 반응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북한이 설계한 심리전 구도에 휘말려들 가능성은 커지기 마련이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전략적 느긋함이나 침묵을 보이는 것이 또다시 시작된 남북 무인기 갈등 정국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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