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원자폭탄과 한국현대사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동서대 석좌교수 입력 2016-06-24 03:00수정 2016-06-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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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 투하, 빠르거나 늦었다면 6·25전쟁 피할 수 있었을 것
이런 가정에서 ‘원폭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인’이라 볼 수 있어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동서대 석좌교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5월 히로시마 방문은 사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히로시마 사람들도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압도적 다수의 히로시마 주민들은 원자폭탄을 투하한 나라의 대통령이 희생자를 추도하고 ‘핵 없는 세계’의 실현을 약속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미일 화해나 동맹의 심화조차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부각되면서 침략과 전쟁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건 오바마 대통령과 히로시마 주민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의외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히로시마 주민은 사망자에 대한 추도 이상으로 핵무기 폐기를 강력히 바랐다. 오바마 대통령도 연설 첫 부분에서 “71년 전 맑고 화창한 아침에 하늘에서 사신(死神)이 내려앉아 세계가 변했다”고 말해 핵무기를 ‘인류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수단’으로 표현했다.

그 후 오바마 대통령은 10만 명이 넘는 일본인, 수많은 한국인 희생자 그리고 12명의 미국인 포로를 언급하며 모든 사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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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은 ‘수천 명의 한국인 희생자’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영어 표현의 문제이며 ‘수만 명’을 내포하는 ‘수천 명’이다. 실제로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사망자는 약 3만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나는 원폭 개발이라는 군사기술 혁명의 최대 희생자가 히로시마 주민도,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 아니었나 생각할 때가 있다. 물론 한국에 원폭이 투하된 적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직접적인 피해자 수는 한정돼 있다. 하지만 원폭이 한국현대사, 특히 분단과 전쟁의 기원에 끼친 압도적인 영향력은 헤아릴 수 없다. 그 피해도 막대한 것이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뒤 적어도 최초 1년간 미국은 태평양·극동 지역에서 장기적인 대일 군사전략을 구상할 수 없었다. 일본군이 신속히 남서 태평양 지역에 진출해 미군의 접근을 거부하는 방어선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3년 말까지 두 가지 군사기술 혁명이 진행됐다. 하나는 신형 고속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미 함대의 재편성이고 다른 하나는 대형 B-29 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이었다. 이 두 가지 기술혁명이 결합하면서 미국이 중부 태평양 섬들을 점령하고 거기서 일본 본토를 폭격한다는 새로운 전략이 탄생한 것이다. 그것이 전쟁의 결과를 결정했다.

한편 처음에 구상한 미 합동참모본부의 군사전략은 대만과 그 건너편의 샤먼(廈門·하문)을 점령해 일본 본토와 남서 태평양 방면을 단절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 연안을 따라 북상해 중국 대륙의 항공기지에서 일본 본토를 폭격하려 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오키나와(沖繩)·남규슈(南九州)에 상륙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이 두 전략 이상으로 일본을 몰아붙인 것은 중부 태평양 섬들을 북상하는 새로운 전략이었고 제3의 군사기술 혁명, 즉 원폭의 개발이었다. 사이판에서 비행해 온 B-29 대규모 비행편대가 3월 10일 도쿄를 초토화했고 티니언 섬(북마리아나 제도의 섬)에서 날아온 B-29가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을 투하했다.

만약 원폭 완성이 한두 달 빨랐다면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전쟁이 종결되고 한반도 전체가 미군에 의해 점령됐을 것이다. 반면 그 완성이 한두 달 늦었다면 한반도는 소련의 점령하에 들어갔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분단은 피할 수 있었고 5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일본 군사지도자들의 중대한 책임도 시사하고 있다. 도쿄 대공습과 오키나와 함락 이후 그들이 ‘본토 결전’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도, 한국의 분단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동서대 석좌교수
#원자폭탄#히로시마 원폭 투하#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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