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권 치부 드러낸 81세 女의원의 용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CIA 테러용의자 고문 보고서’ 공개… 최소 39명에 잔혹한 고문
보수진영 반대 뚫고 발표 주도… “CIA, 美 가치-역사에 오점 남겨”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1년 9·11테러 뒤 용의자 총 119명을 구금했고 이들 중 상당수에게 물고문과 성고문 위협 등 야만적이고 잔혹한 고문을 자행한 사실이 공식 보고서를 통해 처음 확인돼 국제적 파장이 일고 있다. 미 행정부는 테러 집단과 극단주의자의 보복 공격이 뒤이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외 주요 공관과 군기지에 경비강화 조치를 내렸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민주·캘리포니아·사진)은 9일 워싱턴 의사당에서 ‘CIA 구금 및 신문 프로그램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2년 작성하기 시작한 보고서는 원본이 6800여 쪽이며 이날 발표한 것은 528쪽의 축약본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테러 용의자 119명을 아프가니스탄 태국 폴란드 등의 비밀 감옥에 가둔 뒤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했다. 이 중 최소 39명에게는 이른바 ‘강화된 신문 기법’을 적용해 잔혹하게 다뤘다. 일부는 후유증으로 환각, 편집증, 수면장애 등을 겪었다. 또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과 관련한 정보는 고문과 무관하게 얻었다고 지적해 CIA 신문 프로그램이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고문에 책임 있는 CIA 및 정부 관리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서는 등 미국 인권외교에 비상등이 켜졌다. 올해 81세로 미 의회 최고령 여성 의원인 파인스타인 정보위원장은 CIA와 보수진영의 격렬한 반대를 모두 막아내 보고서 공개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는 “CIA는 미국의 가치와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5년간 정보위원장으로 보고서 작성부터 발표까지 전 과정을 이끌었다. 특히 4월에는 보고서 작성을 방해하려는 CIA의 공작을 폭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존 브레넌 CIA 국장을 향해 “CIA가 상원 컴퓨터 시스템에 몰래 접속해 보고서 관련 정보를 삭제했다”고 비난했다. 이는 보고서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해 CIA의 ‘국가 안보’ 만능 논리를 눌렀다.

같은 당 소속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CIA의 건의에 따라 보고서 공개 수위를 낮추려고 파인스타인을 설득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그는 1961년 샌프란시스코의 흑인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강한 진보성향을 지녔으며 1992년 상원의원에 처음 당선된 뒤 2012년 5선에 성공해 22년째 상원 의석을 지키고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김기용 기자
#CIA#인권#치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