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에게 183차례 물고문… 11일간 棺 크기 상자 감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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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고문 실태 보고서’ 공개]
낱낱이 드러난 美의 ‘인권 치부’

“알카에다 요원 아부 주바이다는 수감되자마자 관 크기의 상자에 266시간(약 11일) 동안 갇혀 있었다. 주바이다는 고문관에게 꺼내달라고 울며 사정했지만 ‘네가 이곳에서 나가는 유일한 길은 관에 갇혀서’라는 답을 들었다. 그러고는 17일간 물고문을 당했다. 일부 요원들이 ‘적정선을 넘었다’며 고문 중단을 건의했지만 책임자는 ‘그런 말은 도움이 안 된다’고 묵살했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가 9일 공개한 ‘중앙정보국(CIA) 구금 및 신문 프로그램 조사 보고서’는 인권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이 테러 용의자 신문을 위해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야만적이고 잔혹한 고문을 자행했다고 고발했다.

○ 고문 견디다 못해 자해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부터 구금 및 신문 프로그램이 폐지된 2008년 4월까지 총 119명의 테러 용의자들이 CIA가 아프가니스탄 등에 개설한 비밀 감옥에 구금됐고 이 중 최소 39명이 ‘강화된 신문(enhanced interrogation)’으로 불린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9·11테러의 주범 중 한 명인 알카에다 작전 참모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는 최소 183차례 ‘워터 보딩’이라고 불리는 물고문을 받았다. 움직이지 못하게 눕힌 다음 얼굴에 물을 부어 고통을 가한다. 거의 ‘익사 수준’이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물고문 중 무함마드가 코로 숨을 쉬려 하자 고문관들이 손으로 그의 입술을 위로 올려 입을 연 뒤 다시 물을 부었다.

알카에다 요원인 컴퓨터 공학자 마지드 칸은 항문을 통해 직장 안으로 물을 주입하는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보고서는 5명이 이런 고문을 당했다고 적시했다.

한 용의자는 72시간 동안 옷이 벗겨진 채 끊임없이 찬물 세례를 받았으며 또 다른 용의자는 나체로 찬 바닥에 서 있는 고문을 당하다 다음 날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보고서는 “일부 용의자들은 고문을 견디지 못해 자해를 하다 또 다른 고문을 당했다”고 적었다. 2002년 미 해군 함정 테러를 모의하다 잡힌 알카에다 요원 아브드 알 라힘 알 나시리는 구금 중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을 벌이다 항문을 통해 직장으로 음식물을 집어넣는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아울러 빗자루로 성고문 위협을 가하거나 눈을 가린 채 몸 가까이 전동 드릴을 대는 수법 등도 동원됐다. 또 용의자가 느끼는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러시안룰렛(회전식 연발 권총에 총알을 한 발만 넣고 탄창을 돌린 뒤 자기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목숨을 거는 내기)’까지도 사용됐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구금 기간도 길어 119명 중 47명은 1년 이상 구금됐다. 주바이다는 1590일(4년 130일)로 가장 오래 갇혔고 알 나시리는 두 번째로 긴 1370일(3년 275일)을 갇힌 상태에서 고문을 받았다.

○ 테러 정보 습득에 효과 없어

보고서는 CIA가 강화된 신문 기법을 통해 테러와 관련한 중대 정보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119명 중 26명은 테러 정보와 별 상관이 없었는데도 갇히거나 고문당했다. 아부 후다이파는 선 채로 66시간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을 받았지만 CIA는 고문 뒤 뒤늦게 그가 테러와 관련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CIA는 고문을 통해 오사마 빈라덴 은신처를 알아냈다고 주장해 왔지만 사실 빈라덴 정보는 이와 무관하게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CIA는 지금까지 의회에 2004년 하산 굴이라는 테러 용의자를 고문해 빈 라덴의 연락책인 아부 아흐메드 알 쿠웨이티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굴은 CIA에 잡히자마자 쿠웨이티 관련 정보를 털어놨다. 쿠웨이티는 빈라덴과 다른 알카에다 지도자들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최측근 조수라면서 파키스탄 내 안가에 살고 있다고 정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CIA는 그가 더 많은 정보를 실토할 것으로 보고 그를 고문하기로 결정했다. 공중에 매달아놓고 59시간 잠을 안 재우는 과잉 고문을 했다. 굴은 고문 뒤 환각 증세를 보였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CIA는 그럼에도 신문 프로그램과 관련해 백악관과 의회에 허위 보고를 했다. CIA는 2007년 의회에 구금된 테러 용의자 수를 119명이 아니라 97명이라고 알렸고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겐 98명이라고 보고했다.

이번 보고서 공개로 미국 주도의 인권 외교는 한동안 휘청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전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고발로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 행태가 폭로된 것과 맞물려 인권 국가로 자부하는 미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인권 후진국이라고 낙인 찍혔던 중국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비판하고 나섰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CIA의 고문 실태 보고서에 대해 “우리는 줄곧 고문에 반대해 왔다. 미국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고 (인권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반대한다”고 거듭 미국을 겨냥했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CIA#고문#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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