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軍 발포…親무르시 사상자 속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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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카이로 김영식기자 1信

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는 등 이집트가 또다시 유혈충돌과 대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무르시 지지 시위대 2000여 명은 5일 오후 카이로 시내 무르시 전 대통령이 감금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통령궁 수비대 앞에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이집트군은 수비대 앞으로 행진하던 시위대를 향해 처음에는 하늘을 향해 경고사격을 한 뒤 곧이어 시위대에 발포했다. 발포 즉시 한 남성이 군중 속으로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고 BBC가 보도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최소 4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반면 군은 탄약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CNN이 전했다.

카이로 기자 근처 하람 지역에서는 무장한 시위대가 경찰서를 습격해 1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고 다만후르 지역에서는 무르시 지지파와 반대파가 충돌해 10여 명이 다쳤다고 이집트 나일TV가 전했다.

이집트 군부는 또 시나이 반도에 있는 알아리시 공항이 무르시 지지 세력으로 추정되는 이슬람반군의 공격을 받은 뒤 남부 시나이와 수에즈 등 일부 지역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로이터통신과 가디언 등 서방 언론이 보도했다. 시나이 반도의 도시 아리시에서도 무르시 지지파와 반대파의 충돌이 발생해 경찰차가 불타는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 軍, 무르시 석방 요구 시위대와 충돌… 카이로 ‘피의 금요일’ ▼

이에 앞서 무슬림형제단이 주축인 연합단체 ‘국민연대(NASEL)’는 5일 낮 12시(한국 시간 5일 오후 7시)부터 전국 각지의 이슬람 사원 등에서 ‘거부의 금요일’로 명명한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 금요일은 이슬람의 주일이다. 이들은 ‘혁명을 보호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지금의 이집트는 테러행위를 일삼는 경찰국가”라고 군부를 규탄했다.

이에 따라 이집트는 이번 주말을 맞아 ‘혁명의 완성’과 ‘내전의 발발’이라는 두 갈래의 중대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쇠파이프와 방탄조끼로 무장한 무르시 지지 세력이 집결한 카이로 북동쪽 교외의 나스르시티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이들은 군부의 무르시 정권 축출을 비판하며 4일부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반면 카이로 시내 타흐리르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제2의 시민혁명’을 해냈다는 기쁨에 젖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광장을 찾은 바산뜨 함스 씨(여·27)는 “무르시는 이집트가 아닌 한 단체의 지도자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실망감이 컸다”며 “이제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이 물러나 기쁘다”고 말했다.

무르시를 축출한 군부와 검찰은 무르시 지지파의 반발을 조기 차단하고 속히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무슬림형제단의 와해 작전에 돌입했다. 검찰은 카이로 동부 모카탐에 있는 무슬림형제단 본부에서 일어난 시위대 사망의 책임을 물어 무슬림형제단 지도부 200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미 군은 4일 밤 무함마드 바디에 무슬림형제단 의장도 체포했다. 카이로에 있는 국가기관과 기업은 5일에도 대부분 문을 열었고 시위 기간에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던 주유(注油) 대란과 정전 문제도 크게 줄었다. 4일 이집트 증시는 7.3% 급등해 최근 1년간 최대 일일 상승폭을 기록하며 무르시 대통령 축출에 환호했다.

하지만 아직은 정국 안정을 기대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많다. 아들리 알만수르 임시대통령이 5일 상원을 해산시켰다고 국영TV가 전했다.

국제사회는 일단 무르시의 퇴진을 인정하고 있으나 군부 개입 없는 조속한 민정 이양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 BBC 등 대부분의 서방 언론은 “군부 쿠데타는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민주주의로의 조속한 복귀를 당부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무너진 민주적 절차를 복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집트 원조 중단 논란이 뜨겁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당장 원조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실세인 이집트 군부를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며 원조 중단에 반대했다.

대부분의 아랍권 국가는 무르시 축출을 지지했다. 6월 이집트와 외교 관계를 단절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무르시의 축출은 정치적으로 변질된 이슬람주의의 몰락”이라고 반겼다. 하지만 온건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튀니지의 문시프 마르주끼 대통령은 “무르시의 축출과 군부의 개입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연합(AU)도 이날 이집트의 회원국 자격을 잠정 중단했다. AU의 아드모어 캄부치 총무는 “군부가 선거를 통해 뽑힌 정부를 축출하면 해당 국가의 회원국 자격을 잠정 박탈한다”고 밝혔다.

한편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물러날 수 없다고 큰소리치던 무르시 전 대통령의 최후는 무척 초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일 특공대원들이 대통령궁에 들이닥쳤을 때 그는 순순히 압송에 응했다. 불리한 상황을 직감한 경호원들은 몇 시간 전 이미 그의 곁을 떠나고 소수의 무슬림형제단 측근만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AP통신은 5일 “최근 몇 달간 무르시가 사법부 경찰 군 등 모든 권력기관과 불화를 빚었다”며 “그 결과 권좌에서 물러날 때 누구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 조력자를 찾기가 여의치 않자 무르시 대통령은 서방국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아라비야는 민심이 1년 만에 스스로 선택한 무르시 대통령에 등 돌린 이유로 무슬림형제단의 권력 독점, 사법부와의 갈등, 무함마드 후사인 탄타위 국방장관 해임, 무슬림형제단의 월권 등 10가지를 꼽았다.

카이로=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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