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급한 불 껐다… 유로존, 구제금융 승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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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유로 지원 대가로… 부실 가장 큰 2위 은행 청산
10만유로미만 예금은 보호… 뱅크런 우려 등 불씨는 남아

키프로스가 국가부도(디폴트·채무불이행)를 면했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은 25일 키프로스가 부실 규모가 가장 큰 2위 은행인 라이키 은행을 청산하는 내용의 구제금융 협상안을 승인하고 100억 유로(약 14조4676억 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키프로스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어 유로존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5번째 국가가 됐다.

키프로스 사태 해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로화가 강세로 돌아섰고 아시아와 유럽증시도 일제히 상승했다. 협상은 타결됐지만 급한 불만 끈 것이라 키프로스 경제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당장 26일부터 은행 영업이 재개되면 예금인출 사태(뱅크런)가 우려된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키프로스와 유로존에 영향을 미쳤던 불확실성이 끝났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키프로스에 긴급 유동성 지원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25일에야 합의된 구제금융안의 핵심은 소액 예금주는 보호하는 대신 키프로스 금융권을 장악한 러시아 재벌과 마피아의 자금에 손해를 보게 만든 것이다. 일괄적인 예금 부담금을 요구했던 유럽연합(EU) 및 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 채권단과 국민적 반발 때문에 은행 예금 손실은 무조건 피하려 했던 키프로스 정부가 한발씩 물러서 타협한 결과다.

이 합의안에 따르면 막대한 러시아 자금이 예치된 것으로 알려진 라이키 은행의 부실 자산은 배드뱅크(부실채권 전담은행)로 편입되고, 10만 유로(약 1억4467만 원) 미만의 예금액과 우량자산은 최대 은행인 키프로스 은행으로 이전된다. 라이키 은행에 10만 유로 이상의 거액을 예치한 예금주의 경우 은행 청산에 따라 최대 40%의 예금 헤어컷(손실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키프로스는 이를 통해 약 42억 유로를 조달하게 된다.

라이키 은행과 함께 문제가 된 키프로스 은행도 자본 재편을 해야 하는데 선순위 채권자들과 대주주, 거액 예금주들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키프로스 은행의 10만 유로 이상 예금자도 약 30%의 헤어컷이 예상된다고 키프로스 정부가 밝혔다. 하지만 키프로스의 모든 은행에서 10만 유로 미만의 예금액은 전액 보호된다. 키프로스의 은행권 예금은 총 680억 유로 중 10만 유로 이상 고액 예금은 약 380억 유로다.

키프로스 사태는 당초 국가경제 규모가 EU의 0.2%에 불과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EU가 일괄적인 은행예금 부담금을 부과하는 구제금융 사상 초유의 해법을 제시하자 뱅크런 조짐이 나타났고, 특히 키프로스에 막대한 자금을 넣은 러시아가 반발하며 지정학적 이슈로 확산돼 세계 금융권을 흔들었다.

많은 피해를 본 러시아도 일단 협상 결과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협상결과가 발표된 뒤 “키프로스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키프로스 정부안에 대해 부정적 기류가 강했던 채권단이 결국 협상안을 수용한 것은 키프로스의 디폴트 선언과 유로존 탈퇴 가시화가 간신히 진정 국면에 들어선 유럽 경제에 불러올 큰 충격파를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키프로스#유로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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