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새권력 中 당대회 개막]1987년 개혁-개방…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2012년 5세대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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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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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당대회 키워드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는 중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국가의 방향을 결정해 온 최대 정치 이벤트다.

1982년 열린 제12차 당대회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사후 6년간의 혼란을 매듭짓고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할 권력기반을 확립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1977년 복권된 덩샤오핑(鄧小平)은 이 자리에서 마오쩌둥의 후계자 화궈펑(華國鋒) 주석의 축출을 승인받고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자오쯔양(趙紫陽) 총리-덩샤오핑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구성되는 당(黨)-정(政)-군(軍)의 개혁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

제13차 당대회는 후야오방의 총서기 사임으로 변화가 생긴 초기 개혁 지도부의 ‘드림팀’을 수습하고 전문 기술관료를 대거 충원한 시기였다. 특히 이때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 처음 제기됐다. 시장경제 도입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이와 함께 당의 사상통일을 위해 ‘하나의 중심’과 ‘두 개의 기본점’ 논리가 처음 제기됐다. 하나의 중심은 경제 건설이고, 두 개의 기본점은 다시 ‘개혁·개방과 4항 견지’로 나뉜다. 4항 견지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중국 공산당 영도, 인민 민주독재, 사회주의 노선 등 4가지는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13차부터 14차 당대회까지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치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시기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발발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 붕괴 등 중국은 내우외환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덩샤오핑은 학생 시위에 동조적이었던 자오쯔양 총서기를 실각시키고 상하이(上海) 시 서기였던 장쩌민(江澤民)을 그 자리에 앉혔다. 1992년 초 덩샤오핑은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일관된 개혁·개방을 주장함으로써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의 정당성을 재확인했다. 14차 당대회에서 장쩌민은 이를 기반으로 “향후 100년간 국가의 모든 정책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라는 국정(國情)을 벗어나선 안 된다”고 공식 선언했고,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론을 제기해 그동안 당내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일단락시켰다.

15차 당대회는 개혁의 총설계자인 덩샤오핑 사후에 처음 개최됐다. 당시 중국 안팎에서는 톈안먼 사태로 일약 출세한 장쩌민이 물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그는 당대회를 통해 라이벌이었던 차오스(喬石)를 퇴출시키고 세력 기반을 공고히 했다.

장쩌민은 16차 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삼개대표론을 공식 지도사상으로 당장(黨章)에 올렸고 후진타오(胡錦濤)에게 총서기직을 물려줬다. 하지만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막후 정치의 길을 열어뒀다.

17차 당대회는 후진타오 주석-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시대를 정착시킨 시점임과 동시에 시진핑(習近平), 리커창(李克强)을 상무위원에 진입시킴으로써 5세대 지도부의 기초를 닦았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중국#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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