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혁명… 민주화로 가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9일 03시 00분


세계최악 여성차별 딛고 ‘여성해방’ 전사로 나섰다
예멘 반정부시위… 도화선도 여성, 견인차도 여성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예멘의 반정부 시위는 사실 한 여성에 대한 석방 요구 시위에서 시작됐다. 타와쿨 카르만 씨(32).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3, 4년 전부터 정치개혁과 여권 신장을 위해 싸워온 시민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올 1월 말 카르만 씨가 불법시위 조직 혐의로 체포되자 학생들과 인권단체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카르만 씨는 석방된 뒤 지금까지 석 달째 예멘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일각에선 그를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멘의 여성 차별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지난해 유엔이 조사한 세계 성(性)불평등 지수에서 조사대상 138개국 중 138위다. 교육기회가 제공되지 않아 여성의 문맹률도 60%에 이른다. 그런 여권의 불모지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이슬람 남성 권력의 정점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

○ 부르카 쓴 시위대

시위 초기만 해도 예멘 시위대에서 여성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위 중심지인 수도 사나 ‘변화의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시위대 중 여성은 기껏해야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성의 수는 급격히 늘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기 여동생과 친척, 친구들을 광장에 데리고 나왔다. 눈만 내놓는 부르카를 비롯해 히잡 등 전통의상 차림이 상당수다.

예멘의 여성 언론인이자 블로거인 아프라 나세르 씨(25)는 미들이스트온라인 기고에서 “요즘은 여성들이 광장에 가면 VIP처럼 존중과 대우를 받는다”며 “보통 예멘에선 집 밖에 나가면 쉽게 성희롱의 대상이 되지만 이제 광장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시위 형태도 과감해졌다. 단순히 행진에 참가하는 것을 넘어 광장에서 밤샘 노숙시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에서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특히 지금까지 100여 명이 숨지는 등 정부의 시위 진압이 강경해지는 와중에도 여성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 두 달째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여성 가멜라 씨는 “우리는 돈을 기부하거나 음식, 옷을 시위대에 제공한다”며 “심지어 진압경찰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들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독재 타도에서 여성 해방으로

여성의 시위 참여가 늘어나면서 예멘의 반정부 시위는 단순한 독재에 대한 저항에서, 남성우월주의로 변질된 기존 이슬람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성격이 확대되고 있다. 본래 이슬람 교리는 재산권을 비롯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했다. 부르카나 히잡 등도 꾸란(코란)에서 강제하는 복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꾸란에 대한 해석이 남성의 전유물이 되면서 현재 아랍 여성들의 가혹한 현실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여성 시민운동가인 아말 하자르 씨는 이집트 신문인 알마스리 알야움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여성들은 정권이 강요한 새장 속에 갇혀 무지(無知)한 채 살아왔다”며 “정권은 원래 순수했던 이슬람의 본질을 나쁜 방식으로 악용해 왔고 결과적으로 극단주의가 판을 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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