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도 못말린 美 하원 ‘결의안’ 터키가 화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6일 03시 00분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비난’에 대사 소환 강력 반발

미국 연방 하원 외교위원회가 4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 치하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집단 학살됐다는 비난 결의안을 찬성 23, 반대 22표라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채택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중동 및 중앙아시아 지역 핵심 동맹국인 터키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 노력을 펼쳤으나 결의안 채택을 막지 못했다. 하워드 버먼 하원 외교위원장은 표결에 앞서 동료 의원들에게 “미국이 터키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키도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구속력 없는 결의안 채택으로 미국-터키 동맹관계가 탈선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의안 채택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터키 정부는 결의안 채택 직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터키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이유로 터키를 비난한 결의안을 규탄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터키 정부는 또 항의의 뜻으로 미국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압둘라 귈 터키 대통령도 “터키 국민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결의안”이라고 미 의회의 결정을 깎아내린 뒤 “터키는 이번 표결이 모든 영역에 미칠 부정적 파문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에 가세했다.

터키는 미 의회가 결의안을 채택할 경우 미국과 터키 간 협력을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터키와 아르메니아 간 화해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반면 아르메니아 정부는 “비인도적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중요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높게 평가하며 결의안 채택을 환영했다.

아르메니아 측은 1차대전 기간인 1915∼1916년 150만 명의 자국민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며 집단학살로 인정할 것으로 요구해 왔다. 터키는 이에 대해 희생자 수가 크게 부풀려졌으며 전쟁과 사회불안 속에서 숨진 것이라며 계획적인 집단학살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많은 사학자가 이 사건을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아르메니아인의 죽음을 집단학살로 인정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취임 이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터키를 방문했을 때 터키를 이슬람 민주주의의 모델국가라고 칭찬하면서도 집단학살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코스타리카를 방문 중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와 관련해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말로 공약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인정했다고 AP는 전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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