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잡는 ‘볼커 룰’ 美의회 통과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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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기 1년 걸어온 길
오바마 “대마불사 대수술”
월가의 저항 만만치 않아
대형화 유도 한국 정책
‘자의반 타의반’ 바뀔 수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금융기관 위험투자 규제 방안’은 뉴욕 월가에 대한 선전포고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가 은행들이 막대한 공적자금 및 정책지원을 받아 살아난 뒤 수익을 내자 다시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겨 가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방안을 주도한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을 따 ‘볼커 룰’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시장이 1년 전에 비해 크게 안정됐지만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이 시스템을 파산 지경에 이르게 했던 바로 그 규칙을 따르고 있다”며 “엄청난 수익을 낸 금융회사들이 중소기업 대출과 신용카드 이율 인하는 물론 납세자들로부터 받은 구제금융 상환도 거부하는 행태를 보고 금융시스템 개혁에 대한 결심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볼커 룰의 핵심은 은행들의 과도한 위험 추구와 대형화를 규제하는 것이다. 은행이나 금융지주회사들이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를 소유하거나 투자하지 못하게 하고, 고객의 돈을 불려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은행 자체의 수익을 높이기 위해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금지하도록 했다. 또 대형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부채를 지지 못하도록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금융회사들의 손발을 묶고 덩치가 커지지 못하도록 막아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문제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월가 금융회사들이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것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10년간 최소 9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을 매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행정부는 몇 주 안에 구체적인 입법안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월가의 저항이 거세 개혁안이 월가의 엄청난 로비와 정치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금융시스템 개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국제적인 금융규제를 논의하는 대표적인 기구. FSB는 선진 7개국(G7)이 주도해 1992년 설립한 금융안정화포럼(FSF)이 올해 3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한국과 브릭스(BRICs) 등 12개국을 회원국으로 추가하면서 확대 개편됐다. FSB는 금융 감독 및 규제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금융권 보상체계 개편, 금융회사 자본 및 유동성 규제, 도덕적 해이 방지 등에 대해 논의 중이다.

한편 한국 정부는 국내 은행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수합병(M&A)을 촉진하고 대형화를 유도하며 금융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안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특별연설에서 “현행 금융체제로 그냥 가기엔 분명 문제가 있다”며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규모가 큰 금융회사는 도산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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