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오바마 서약대의원 뺏을까”

  • 입력 2008년 4월 2일 03시 03분


“서약대의원(pledged delegates)도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서약대의원 뺏어오기’ 경쟁이 벌어질 조짐이 일고 있다.

선두주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지만 역전이 힘든 상황에 처한 힐러리 클린턴(사진) 상원의원 캠프 주변에서 서약대의원 공략을 준비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

힐러리 후보는 최근 주간 타임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우리는 이른바 ‘서약’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모든 대의원은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으며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힐러리 캠프 고위 참모는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당장은 아니지만 전당대회가 임박했는데도 박빙의 접전이 계속되면 누구나 상대방의 대의원을 잡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약대의원은 유권자의 투표 결과에 따라 배분되는 일반 대의원(3253명)을 뜻한다. 당 간부 등으로 구성된 슈퍼대의원(super delegates·비서약대의원·795명)과 달리 서약대의원은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없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한지와 별개로 서약대의원이 반드시 자신이 지지를 서약한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명백한 법적 의무는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워싱턴의 한 정치전문 변호사는 1일 본보 기자에게 “전당대회 규정 등을 보면 서약대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에게 약속한 후보를 지지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게 법적 의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980년 경선 때 테드 케네디 후보 쪽이 전당대회장에서 지미 카터 후보 지지 서약대의원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해 부작용이 일어나자 1982년 규칙을 강화했다. 하지만 개정 규칙 역시 ‘서약대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는 훌륭한 양심을 지녀야 한다’고만 돼 있다. 이때 만든 것이 슈퍼대의원 제도다.

서약대의원 뺏기가 실제로 이뤄지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벌써부터 “‘이웃집 아내’를 탐해선 안 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후보 지지 서약대의원인 졸레네 이베이 씨는 MS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가 ‘힐러리를 지지해 달라’고 직접 부탁해야만 힐러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같은 접전 속에서 8월 25일 전당대회가 가까워 오면 모든 대의원이 공략 대상이 될 수 있어 내분이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게 민주당 안팎의 걱정이다.

이 때문에 ‘비공식 전당대회를 통한 후보 조기 결정론’이 제기되고 있다. 전당대회까지 기다리지 말고 6월 3일 경선이 모두 끝난 직후 795명의 슈퍼대의원들이 모여 지지 후보를 비공식 확정함으로써 지루한 공방전을 끝내고 전선(戰線)을 공화당으로 돌리자는 얘기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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