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뜨는 별, 지는 별

  • 입력 2006년 9월 26일 17시 02분


'마피아와 손잡은 과두재벌(올리가르히)은 지는 별, 재벌과 결탁한 크렘린 관료는 뜨는 별.'

1991년 사회주의 붕괴 이후 10여 년 간 러시아에서는 신흥 올리가르히가 크렘린 권력의 배후로 행세했다. 마피아와 손잡고 국유재산 사유화 과정에 참여해 부를 쌓은 이 벼락부자들은 최고 권부의 상징이던 크렘린에 정치자금을 지원하며 핵심 관료 인사에도 개입했다.

미디어재벌 MOST의 소유자였던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석유재벌이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이 이 시절 올리가르히의 대표적 인물들.

그러나 2000년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이들 중 상당수는 국외로 망명하거나 감옥에 들어갔다. 푸틴 대통령이 신흥재벌의 정치 관여를 더 이상 묵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누리던 영화(榮華)는 지금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러시아 자본주의 도입 과정을 '러시아의 해적화(Piratization)'라고 부른바 있는 마셜 골드만 미 웰즐리대학 교수는 최근 모스크바타임스에 "러시아 권력의 새로운 핵심은 이른바 '크렘린 올리가르히'인 '실로비키'(제복 입은 군사 안보 관료)"라는 의견을 밝혔다.

과두재벌 올리가르히가 크렘린에서 빠져나가면서 안보 분야에 밝은 실로비키들이 힘의 공백을 메웠고 이들 중 일부가 '실세 중의 실세'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실로비키 인력 풀이 생겨난 데는 특히 푸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큰 역할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과 함께 일했던 KGB 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출신 인사들을 대거 핵심 지위에 올려놓았다.

골드만 교수는 "오늘날 권력과 국영 기업을 동시에 쥐고 있는 집단이 크렘린 올리가르히, 즉 실로비키"라며 이들이 제정러시아 시대에도 금지돼 있었던 이중의 권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고리 세틴 대통령행정부실장,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부 장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연방보안국(FSB) 국장 등이 실로비키의 대표자로 꼽히고 있다. 특히 세틴 부실장은 러시아 3대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티'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으며 크렘린 올리가르히의 대표 주자로 불린다.

올해 초 서유럽지역 가스 차단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실로비키는 거대 기업을 외교의 도구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득세로 러시아 산업생산성이 향상되거나 자원이 효율적으로 이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골드만 교수는 설명했다.

모스크바=정위용특파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