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여 울지마오 졌지만 이겼잖소… 애거시 테니스코트 떠나

  • 입력 2006년 9월 5일 03시 05분


코멘트
3일(현지 시간) US오픈 테니스대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뉴욕 퀸스의 아서 애시 테니스 코트.

며칠째 비가 내리던 뉴욕 하늘이 이날은 청명했다. 2만3000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니스의 황제 앤드리 애거시(36·미국)가 베냐민 베커(세계 랭킹 112위·독일)를 상대로 힘겨운 3회전 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허리 통증 완화 주사까지 맞고 나왔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1-3으로 패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로서는 마지막 경기였다.

눈가에는 이슬이 고였다. 아니, 경기가 끝나기 직전 패배가 거의 확실해지자 벌써 그의 눈은 충혈되고 있었다. 패배가 확정된 이후 영웅의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그는 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관중은 약 4분간 기립박수로 떠나는 영웅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한때 여자 테니스계를 평정했던 아내 슈테피 그라프는 객석에서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21년간의 현역생활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마이크를 받자 이렇게 말했다.

“스코어보드는 내가 오늘 졌다는 것을 말해 주지만 지난 21년간 내가 발견한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여러분의 사랑이 나를 코트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이끌어 줬다. 나는 영감을 배웠고 관대함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8차례 메이저대회를 제패한 애거시는 투어 대회를 포함하면 통산 60번 단식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특히 역대 5번째로 ‘커리어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를 시기에 상관없이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이루며 당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

영화배우 브룩 실즈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그는 그라프와 세기의 테니스 커플을 이루며 화제를 모았다.

또 그는 자선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은퇴를 미뤘던 이유 중 하나도 그가 고향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사비를 들여 건립한 저소득층 대상 학교에 필요한 돈을 추가로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