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이동계절… 지구촌 조류독감 확산 우려

  • 입력 2005년 10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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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철새 이동시기가 찾아오면서 조류독감이 ‘대륙간 전염병(팬데믹·pandemic)’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경고가 자주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이 조류독감 백신을 대량 확보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곳곳에서 ‘백신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엔 유엔 인플루엔자 담당 조정관 데이비드 나바로 박사가 “조류독감으로 최대 1억50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고, 3일 인도네시아에서 조류독감 의심 환자가 사망하는 등 7월 이후 6명이 조류독감으로 사망했다.

▽백신 확보에 발 벗고 나선 미국=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조류독감에 대비해 60억∼100억 달러 규모의 백신 및 항바이러스 약품 비축용 예산을 의회에 요청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현재 230만 명분의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은 우선 2000만 명분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1억5000만 명분까지 비축량을 늘릴 계획이다.

전 세계적으로 조류독감 경계령이 내려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7월 이후 6명이 조류독감으로 사망했다. 인도네시아 방역 관계자들이 오리의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 보건당국은 조류독감의 유럽 상륙 가능성에 대비해 1460만 명분의 백신을 주문했다. 핀란드도 지난달 28일 전 국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백신(520만 명분)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프랑스 호주 등도 백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백신도 ‘빈익빈 부익부’=그러나 실질적으로 백신이 시급한 아시아 빈국들이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전체 인구의 10% 정도인 40만 명분을 비축해 놓고 있을 뿐이다. 말레이시아는 전체 인구의 20∼30%에 해당하는 백신을 비축하기로 했지만 아직 계획일 뿐이다.

아시아 빈국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국제적 대처를 위해 앞으로 3년간 1억 달러가 필요하지만 모금액은 165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백신도 무용지물?=더 큰 문제는 바이러스가 계속 변이를 일으키고 있어 백신을 많이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 로이터통신은 최근 “베트남 중국 등에서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현재 개발된 백신에 점점 내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 프랑스 등에서 새로운 조류독감 예방 백신을 개발하고 있으나 아직은 실험 단계일 뿐이다. 새로운 백신을 개발한다고 해도 조류독감 발생 시 즉각 대처할 수 있으려면 대량 생산 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백신 생산 능력을 갖춘 국가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9개국뿐이고, 이들 나라의 생산 능력을 모두 가동해도 연간 3억 명분만 공급할 수 있다.

▽국내 상황=한국도 조류독감 안전지대가 아니다. 조류독감이 빈번히 발생하는 동남아시아와의 교류를 원천 봉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류독감 백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비축량은 70만 명분 정도다. 2008년 완공을 목표로 전남 화순군에 백신 원액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고 있지만 당장 조류독감이 닥칠 경우의 대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농림부는 겨울 철새를 통해 조류독감이 한반도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를 특별방역대책기간으로 설정했다. 또 10월 중순경에 조류독감 발생주의보를 발령하기로 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철새 배설물은 ‘날아다니는 폭탄’▼

조류독감 바이러스(H5N1)의 확산 주범은 철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조류독감이 발생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대부분 ‘동아시아·호주’ 철새의 이동 경로에 포함돼 있다. 또 7월 이후 조류독감 발생 지역인 러시아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 몽골도 마찬가지다.

들오리를 비롯한 야생 조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닭이나 집오리 같은 가금류가 쉽게 죽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조류독감에 걸리고도 살아남은 야생 조류는 적어도 10일간 부리 접촉이나 배설물을 통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특히 철새들이 이동하면서 배설물을 통해 퍼뜨리는 바이러스는 가금류 사육장을 향한 ‘공중 융단폭격’이나 마찬가지다. 사육장 안에 가금류를 가둬 두지 않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철새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하면서 조류독감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야생 조류의 이동 반경에 따라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인도 등에 조류독감이 퍼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른바 대륙간 전염병이다.

한편 4, 5일 시작되는 이슬람교의 라마단(금식월)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조류독감 비상이 걸렸다. 라마단 기간 중 사우디의 이슬람교 성지를 방문하는 아시아 각국 이슬람교도들을 통해 조류독감이 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동지역 영자지인 아랍뉴스는 3일 “아직 조류독감이 사람 간에 감염된다는 보고는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사우디 당국이 공항과 항만 등 모든 입국 통로에서 체열 측정 검사를 강화하는 한편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독감 예방 접종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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