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용하]日독도 침탈 기도 사죄해야

  • 입력 2005년 2월 21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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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이 한국 영토 ‘독도’를 빼앗아 일본 영토에 편입하려 책동한 1905년 2월 22일의 100년째 되는 날이다. 최근 일본은 이날을 기념해 중앙정부의 후원 아래 시마네(島根) 현에서 ‘다케시마(독도) 날’을 제정 선포해 다시 ‘독도 침탈’을 다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독도는 서기 512년부터 신라 영토로 기록된 ‘우산도’이고 ‘독도’ ‘석도’ 등으로도 불린 한국 영토임을 100년 전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는 잘 알고 있었다. 1869년 메이지 정부가 조선과의 국교 재개를 위해 외무성 관리들을 부산에 파견할 때 외무대신과 태정관(총리대신)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부속’임을 확인한 문건이 ‘일본외교문서’ 제3권(137쪽)에 분명히 수록돼 있다. 일본 근대지도와 지적도를 편제할 때에도 시마네 현의 질의에 5개월간 조사한 뒤 일본 내무대신과 태정관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땅’이라는 결정을 1877년 3월 17일자로 내려 시마네 현에 보낸 공문서가 ‘공문록(公文錄)’에 보존돼 있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 선포▼

일본 측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욕심을 간취한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로 지방행정제도를 개편해 울릉도와 독도를 강원 울진군에서 분리한 뒤 ‘울도군’으로 독립시켰고, 이러한 사실을 ‘관보’에 게재해 세계에 알렸으며, 군수를 임명 파견했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동해 해전을 앞두고 독도를 침탈하고 싶은 야욕이 끓어올랐다. 마침 이때 시마네 현 거주 나카이(中井)라는 어업가가 독도 물개잡이 독점권을 이권(利權)으로 임대하겠다며 한국 정부에 제출할 대부 신청서를 작성해 일본 정부에 알선을 요청했다. 일본 해군은 한국 대신 일본 정부에 독도 영토 편입 및 대부 신청서를 내면 책임지고 무료 대부하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일본 정부는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는 주인 없는 ‘무주지(無主地)’이므로 나카이의 청원을 접수해 일본 영토에 편입시키고 ‘다케시마’라 이름 붙여 시마네 현 관리 아래 둔다고 결정했다. 당시 국제공법상 영토 편입 요건은 ①대상이 ‘무주지’여야 하고 ②무주지 주변 모든 국가에 조회해 세계에 고시하는 것 등이었다. 여기서 국제적 고시는 ‘중앙정부’가 ‘관보’ 등에 게재해 세계 각국이 알도록 하는 것을 일컫는데 도쿄에는 한국 등 세계 각국 공사관이 활동 중이어서 일본의 ‘독도 침탈’ 사실이 즉각 세상에 알려질 것이었다.

이에 일본 정부가 낸 잔꾀가 ‘시마네 현에서 관내(管內) 고시하라’는 훈령이었다. 당시 한국인으로 시마네 현 거주자는 없었으므로 감출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시마네 현이 ‘산음(山陰) 신문’이라는 지방지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 1단 크기로 ‘관내 고시’한 날이 바로 100년 전의 오늘이다. 한국은 일본이 독도를 이렇게 절도해가려 했던 사실을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연합국도 인정한 한국영토▼

그러나 1905년 1월 당시 ①독도는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 ‘유주지(有主地)’였고 ②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조회’ 또는 국제 ‘고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독도 편입은 원천적으로 무효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 총사령부도 1946년 1월 29일 독도를 한국 영토로 판정해 한국에 반환했다.

오늘의 일본 정부는 100년 전 독도를 몰래 절도하려 한 죄를 사죄하는 게 바른 길이다. 그런데 도리어 2월 22일을 ‘다케시마 날’로 제정해 ‘독도 재침탈’ 결의를 다짐한다니 ‘도둑질한 날’을 기념하는 나라가 일본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한국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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