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칼럼]축구장의 ‘反日’을 보며

  • 입력 2004년 8월 12일 1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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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 결승 때 중국 관중이 보인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타도 소(小) 일본’을 외치는 젊은 여성의 증오에 찬 표정을 보면서 과거 문화혁명 때 삼각 모자를 눌러썼던 홍위병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터넷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돼지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한 ‘돼지 일본’의 삽화도 돌아다닌다. 오랜만에 ‘대자보’를 보는 기분이다.

최근 고조되는 중국의 민족주의 열기에서는 무서움이 느껴진다. 무엇이 중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했을까.

냉전 종식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됐다.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패배한 중국공산당은 민족주의를 통치의 새 수단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1990년대에 애국주의 교육이 적극 추진됐다.

경제발전과 함께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대중의 불만이 생겨났다. 중국 당국으로선 이 불만이 정권을 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에너지를 분출시킬 대상을 찾아야 했다. 일본과 대만은 중국 대중이 불만을 쏟아낼 ‘가스분출실’로 적격이다. 중국 외교정책의 초점은 이런 방향으로 맞춰졌다.

시장경제의 확대와 함께 상업 미디어가 등장했지만 정치적 비판은 여전히 금기사항이다. 그 대신 스포츠, 예능, 사회 등의 분야에서 미디어가 어느 정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식의 뒷거래가 정치권력과 미디어 사이에 이뤄졌다.

중국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주로 반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반일’ 정서는 대중에게 쉽게 먹혀든다.

실제로 중국 지도부가 반일 정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수뇌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당초 중국 정부는 일본과 중국의 축구 결승전 때 양국 우호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부주석급 인사가 관전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취소했다.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 수뇌부 입장에서 대일관계는 여전히 권력 유지를 위한 보험의 성격이 크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런 애매한 태도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그게 이번 소동의 교훈이다. 중국 수뇌부는 중일 관계의 바람직한 모습과 협조적인 대일 정책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중국 국민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최근 상하이에서 만난 한 중국인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민족주의는 위정자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용한 사례가 많았다”며 “의화단도 그런 예”라고 지적했다.

1세기 전 철도 건설에 떼밀려 고향을 등져야 했던 농민들을 중심으로 의화단이 반(反)그리스도교를 외치며 폭동을 일으켰다. 얼마 안돼 그들은 ‘부청멸양(扶淸滅洋)’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런 움직임을 배후에서 조종한 것은 수구파인 서태후 일파였다.

배타적 민족주의의 분출을 중국 내에서는 ‘정결(情結) 의화단’이라고 부른다. 1999년 미군이 베오그라드의 중국대사관을 오폭한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 군중은 미국총영사 관저에 난입해 불을 질렀다. 그 이후 ‘정결 의화단’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근원을 따지자면 민족주의건, 역사인식이건 중국 쪽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도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일본과 중국 두 나라는 바람직한 관계 조성을 위해 각자 무엇을 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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