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5년 마거릿 대처 탄생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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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세계가 좀 더 현명해진 데에는 구멍가게 집 딸, 대처가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그가 거센 반대 속에서도 견지했던 자유경제와 자유정신에 대한 믿음은 갈수록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미 시사주간 타임이 2000년 벽두 마거릿 대처를 ‘20세기 인물 100인’에 선정하면서 바친 찬사다.

1925년 10월 13일. 대처는 잉글랜드 중부 글랜섬의 허름한 구멍가게 이층집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를 장학생으로 졸업한 뒤 두 차례 하원의원 낙선을 딛고 영국의 첫 여성총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입지전적 신분 상승은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그만큼 극적이다.

대처는 집권 3기에 걸친 강력한 경제개혁정책으로 영국경제를 회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처리즘의 경제철학은 명쾌하다. ‘일한 만큼 얻는다’, ‘누리는 만큼 지불한다’.

그러나 대처리즘의 철저한 자본주의적 논리는 인플레를 잡고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는 성과가 있었지만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대거 거리로 내몰았다. 영화 ‘치킨 런’은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는 닭들을 파이공장에 보내는 무자비한 양계장 주인으로 대처를 그리고 있다.

또 고실업에 따른 가정의 붕괴는 알코올과 마약에 탐닉하며 방황하는 ‘대처 세대’의 아이들을 낳았다.

대처리즘의 뒤안길은 더할 수 없이 쓸쓸한 그의 말년의 모습과 겹쳐진다. 대처는 다우닝가 10번지(총리집무실)를 떠난 지 13년 만에 믿기지 않을 만큼 심신이 허약하고 초라한 노인으로 변했다고 더 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철의 여인’은 쉬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날 국가 지도자로서 그의 덕목은 자주 회자되고 있다.

대처는 그의 저서 ‘국가경영’에서 “미디어가 주름잡는 이 시대에는 유행이 지도자를 삼킬 수 있다”며 지도자의 확고한 신념을 강조했다. 미디어의 거울에 비친 허상을 좇아 춤추는 정치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경구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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