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정안/부시 ‘한국 건너뛴’ 이유는…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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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머무는 시간은 24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순방 도중 잠시 들르는 형식의 일종의 기착성(stop off) 방문입니다.”

9일 외교통상부 프레스룸. 정례 브리핑을 하던 위성락(魏聖洛)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아시아 순방(17∼23일)에 나서는 부시 대통령이 지척에 있는 일본을 방문하면서도 한국에 들르지 않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질문이 또 이어졌다. “일본에 기착은 하는데 왜 한국에는 오지 않는 겁니까. 현안이 없는 겁니까?”

위 국장의 대답은 다르지 않았다. “우리하고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것으로 돼 있고, 일본하고는…. 항공기가 우선은 어딘가에 기착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심지어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사석에서 “어차피 (일본 다음 목적지인) 필리핀으로 바로 갈 수는 없고 급유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일본은 트랜싯(transit·갈아타기)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교부 당국자들이 부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깎아내리려는 배경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50년 혈맹인 한국을 ‘건너뛰고’ 일본을 거쳐 필리핀으로 가는 부시 대통령의 일정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왕따’시키려는 의도나 한미관계의 이상징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부시 대통령의 순방 일정이 처음 알려졌을 무렵 우리 정부가 ‘한국 방문’을 관철하기 위한 막후교섭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돈 터여서 외교부 당국자들은 이래저래 부시의 ‘한국 건너뛰기’가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하지만 외신들이 전하는 부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단순 기착’이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도쿄 시내에서 허리띠를 풀고 저녁을 먹으며 이라크 전후 처리와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단순 기착성 방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부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한국을 들르고 안 들르고는 전적으로 미 행정부의 선택이다. 과거에 일본을 방문하면서 한국을 건너뛴 적이 거의 없긴 하지만 반세기를 헤아리는 한미관계의 ‘성숙함’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 관계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은 아무래도 찜찜하다.

노 대통령의 리더십, 특히 이라크 파병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이 부시 대통령의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나, 반대로 이미 양국간에 파병 협상이 끝났기 때문에 올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 모두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김정안 국제부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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