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언론-여야 일제히 찬사…시라크는 ‘평화의 천사’

  • 입력 2003년 3월 12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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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크 대통령
시라크 대통령
《대서양 양안(兩岸)이 뜨겁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측의 이라크 공격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선언하자 프랑스 여론은 그를 ‘평화의 전사’로 부르며 열광하고 있다. 반면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는 반 프랑스 운동에 불이 붙고 있다. 서방 세계를 이끌어온 미-영 축과 프랑스-독일로 대표되는 유럽 축의 분열로 전쟁보다는 ‘전쟁 이후의 세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라크:노(No)’

11일자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 1면은 온통 붉은 바탕에 흰색의 큰 활자로 이 두 단어만 썼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공격 개시의 빌미가 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 이라크 2차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10일 선언하자 이렇게 파격적인 편집을 한 것. 바탕의 붉은 색은 교통 신호등의 ‘정지’신호를, 활자의 흰색은 평화를 뜻한다.

우파인 시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파 신문 르피가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시라크를 ‘평화의 전사’라고 치켜세우면서 사설을 통해 “시라크 대통령이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움으로써 그의 인생에서 사라졌던 페이지를 다시 썼다. 프랑스의 이름으로 다극화 세계를 수호함으로써 역사의 한 장을 기록했다”고 흥분했다.

시라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선언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프랑스 여론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80% 이상이 전쟁을 반대하고 70%가 거부권 행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자금과 관련된 각종 의혹으로 1년 전만 해도 부패의 대명사였던 시라크 대통령은 이제 반전운동의 대명사가 됐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면서 일약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돋보인 것은 올해 70세인 그의 노회한 정치력. 독일처럼 애초부터 ‘이라크 전쟁 절대 반대’를 공언한 게 아니라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와의 역할 분담을 통해 대미 협조 가능성을 흘리면서 미국과의 대치를 우려하는 국내 및 국제 여론을 다독거렸다. 그런 정지(整地) 작업을 끝낸 뒤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는 게 유럽 언론의 분석이다.

시라크 대통령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열광 뒤에는 ‘위대한 프랑스’를 외치며 미국에 당당히 맞섰던 샤를 드골 대통령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 있는 듯하다. ‘프랑스의 반미는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요지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미국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프랑스 국민의 상처난 자존심을 골수 드골주의자 시라크가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것.

일각에서는 시라크 대통령이 ‘세계 최강국(미국)’과 ‘가장 가까운 이웃(영국)’을 적으로 만들었다는 우려와 비판도 나오지만 “시라크”를 연호하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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