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개혁파 교수 사형선고 保-革갈등 촉발

  • 입력 2002년 12월 5일 17시 54분


선출되지 않은 권력, 종교지도자가 다스리는 이란에서 신정통치를 혁파하려는 개혁파의 요구가 용암처럼 분출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 서방 언론들은 개혁파가 ‘혁명’에 성공할 경우 서방과 이슬람의 관계, 나아가 세계정치의 틀을 뒤바꾸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란은 대통령과 의회는 개혁파가 선출됐지만 79년 회교 혁명 이후 아야톨라(최고지도자)로 불리는 보수적 종교 지도자가 사실상 다스리는 이원적 지배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때문에 내연해온 보수파와 개혁파의 갈등이 결정적으로 폭발한 것은 지난달 6일 한 대학교수에 대한 사형선고.

테헤란 소재 사범대학의 교수인 하셈 아그하자리는 6월 “국민은 이슬람 성직자를 흉내내야 하는 원숭이가 아니다”고 ‘이슬람 휴머니즘’을 주창하며 보수파에 정면 도전했다.

대학생들은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사법부가 ‘이슬람 모독’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하자 거리로 뛰쳐나와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보수파의 민병대원들과 한달째 대치하고 있다. 민병대원들 역시 이슬람 통치를 약화시키려는 자들과의 ‘성전(聖戰)’을 선언하며 강력히 맞서고 있다. 긴장은 6일 ‘학생의 날’을 맞아 더욱 고조되고 있다.

대학생들은 성직자의 통치에 대한 국민투표로 요구를 발전시켰다. 개혁파의 수장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의회는 대통령에게 사법부의 권한을 보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켜 측면 지원하고 있다.

그러자 노련한 보수파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사형선고를 재검토하라고 지시, 한발짝 물러섰다. ‘순교자’가 되겠다며 항소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아그하자리 교수도 4일 항소함으로써 사형이 확정될 가능성은 약화됐다.

이란에서 학생운동은 지각변동의 원천이었다. 저널은 4일 이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50, 60, 70년대 학생들의 시위가 있을 때마다 이란의 정치 변혁이 이뤄졌다”면서 “앞으로 2∼3년 내 결정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저널은 개혁의 기대를 받고 지난해 4년 임기로 재선된 하타미 대통령은 “개혁의 문을 여는 비전은 있지만 실천 단계에서 밀려나는 이란의 ‘고르바초프’가 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분석했다.

뉴욕 타임스의 중동전문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4일자에서 “이슬람의 내부에서 일어난 자유에 대한 열망은 서구와의 극단적 이해의 차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그하자리 교수에 대한 재판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재판”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변화에서 미국의 역할은 민감한 문제. 만약 미국이 이란의 개혁파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 반미 정서가 강한 이란에서 개혁파가 미국의 ‘꼭두각시’로 비쳐 개혁이 좌절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란의 이웃나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군사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미국은 이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피하고 있다.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이란 보-혁 충돌 일지▼

6월 아그하자리 교수 대중연설.

성직자 사회의 개혁 촉구

11월 6일 사법부, 아그하자리 교수에게

사형선고

10일 의회, 대통령에게 ‘사법부 결정

보류권’ 부여하는 법안 통과

13일 하타미 대통령, 사법부 공개

비난

15일 보수파 시위, 사형 집행 요구

17일 최고지도자하메네이,사법부에

사형선고 재고 명령

18일 시위 대학생들과 보수 민병대

충돌

25일 사법부, 사형 재검토 의향

12월 2일 아그하자리 교수, 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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